잡글

안중근

박희욱 2017. 10. 28. 19:13

이 글은 영국인 프레데릭 아더 매캔지(1869년~1931년)가 쓰고 

1920년에 출판한 <한국의 독립운동>에서 발췌한 것이다.




안중근

조선을 위해서는 가장 큰 실수를 범한 조선인이다-Horace N. Allen(한국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였다)


안중근이는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고서 그것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하였다.

그것은 박정희를 살해하고서 유신의 심장을 야수의 심정으로 쐈다고 말한 김재규와 같은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울분이다.

그 울분의 근원지는 자기 자신들이다.


둘 다 울분의 심정에서 비롯된 행위이지만, 울분으로써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미래의 국가 안위에 해로운 그런 울분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

일본인 중에서는 가장 부드러운 통치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고종이 퇴위한 이후 공작이 된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부터 1908년 동안 조선의 통감으로 지냈다.

애당초 한국인들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는 한국인에 대해 진정으로 호의플 품고 있다고 느껴졌고, 그에게 덕이 있었음은 사실이다.


그가 통감에 취임한 이래 이룩한 뚜렷한 업적 중의 하나는 일본인 이민자들을 엄격히 규제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악질적 범법자들이 발목을 잡혀 본국으로 귀송되었다.

그는 한국인들 부당하게 다룬다면 그것은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상처를 입힌다가보다는 오히려 일본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  만큼 안목도 있는 사람이었다.

제국주의적 합병 정책에 그가  끼여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모든 부하들은 그를 정면으로 대해 주지 않았다. 

그의 군부 책임자인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조선인에 대해서 강경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처신한 사람이었다.

그는 후에 데라우치 후임으로 조선의 총독을 역임하였다.


일본 이민의 거의 대부부분은 선의의 정책을 창조하는 데 치명적으로 방해되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통상적으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마치 야만족인 아이누족과 같이 보는 한편, 자신들은 선택된 종족으로서 기회가 있으면 

그보다 열등한 한국인들을 착취하고 거칠게 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몇몇 한국인들은 동양 사람들이 즐겨 쓰는 암살이라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퇴행 행위를 하였다. 

1907년에 한국 정부의 외부 고문이었던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를 지나다가 한국인 전명운에게 피살되었다.

이토 공작은 북부 지방을 여행하다가 하얼빈에서 한국인 안중근 에게 피살되었다. 


두 자객은 모두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는데 전자는 개신교인이었고 후지는 천주교인이었다.

이러한 식으로 조국에 봉사하려 했던 이들로 인해서 한국의 명분은 치명적인 가격을 당했다.


아마도 이 책은 자기 민족의 고통에  대해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진 한국의 젊은 남녀들에게 읽힐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 찰 수밖에 없는 그 응어리를잘 이해한다. 

그러나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그러한 죄악을 자신의 손으로 징벌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그들이 공격하는 그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헌신하고 하는 그 명분에  상처를 주게 된다. 


그  이유는, 

첫째, 그들은 그들의 명분에 대한 동정을 잃는다.

       세계의 양심은 자기 뜻대로 남의 죽음을 초래하는 권리를 가진 개인의 이상이나 무책임한 집단을 배격한다.

둘째, 그들이 공격하는 상대편의 명분을 강화시켜 주고, 

      그들은 자기들이 응징하고 하는 사람들의 수준 이하로 자신을 떨어뜨린다.

셋째, 그들이 그들의 목적을 이루는 일과는 무관한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암살로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자객은 한국에 잔인한 타격을 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국을 일본에 넘겨준 총리대신(이완용)에 대한 암살미수가 있었다.


이 암살사건으로 말미암아 한반도를 가혹히 다스려야 한다고 외쳤던 군부에게 그 길이 열린 것이다.

백작 데라우치 마사타케 장군이 통감으로 임명되었다.

데라우치 백작은 한국에 있는 군부의 지도자였으며 <끝장을 내는 정책>을 수행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사람이었다.

강인하고 냉혹하며 유능한 그가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는 일본의 영광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는 한국인이야말로 씨를 말려 버려야 할 민족이라고 생각했고, 

한국 민족의 마지막 발자취마저도 지워버리려고 작정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을 채찍으로 친다고 한다면 데라우치는 쇠사슬로 칠 인물이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


김재규가 박정희를 제거함으로써 전두환이가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드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함으로써 데라우치를 등장시켰다.

데라우치는 한입합방을 철권통치로써 시작함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이 세 사람들은 저승에서 만나서 서로 무슨 말을 나누고 있을까?



     

         *                            *                                *



일본인들은 외교관들과 영사관 직원들, 특히 영국과 미국의 외교관과 영사관 직원들에게 

도쿄로부터 기피 인물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가르치려고 애썼다. 

일본인들의 성격 중에서 좋은 측면을 보고 진심으로 경도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을 밀어 주었다.


또 그들은 자신을 아름답게 찬미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야말로 멸망한, 

그리고 아무 쓸모도 없는 종족이라는 확신을 증대시키는 데에 그들의 힘을 쏟았다.



*                            *                                *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경멸했드시 지금도 한국인들을 경멸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수치로써 제기할 수 있는 것.


1. 차량 10만대당 교통사고사망자수가 한국은 OECD국가중 1위(13.7명)인데 반하여 일본은 꼴찌(4.7명)라는 것 - <준법성>


2. 독서량이 일본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  - <지성>


3. 한국인들의 법적 소송빈도가 일본의 13배인 것 - <윤리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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