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황장엽

박희욱 2017. 11. 16. 12:25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를 구입한 것은 1999년도였으나 그동안 읽어 보지 않다가 이제 와서야 읽어 보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하여 북한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구입하였으나, 그것은 단지 흥미거리일 뿐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어서였고,

또, 북한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는 한계의 끝까지 출세한 사람이 뒤늦게 한국땅에 망명을 하여서 

마치 자신이 민족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책의 제목도 내 생각에는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역사의 진실이라는 것도 믿지 않는데, 하물며 역사에서 무슨 진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흥미에 이끌려서 18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뒤늦게 읽어보게 된것이다.


황장엽은 해방직전 일본의 중앙대학교에서 2년 정도 법학을 공부한 다음, 

해방후에는 소련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의 요직을 오랫동안 역임하였지만,

정치적 실권을 가진 직책을 맡은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되어진다.


그는 사실상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주체사상 정립에  몰두한 철학자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그는 철학자 답게 매우 사변적인 인간이었던만큼, 그의 주체사상 또한 대단히 사변적이고, 공상적이며, 

철학자도 아닌 내가 감히 할말은 아닌지는 몰라도, 내게는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진다.

좀더 과감없이 말한다면 황장엽의 주체사상은 그 자신의 관념적 노리게에 지나지 않았다고 결론짓고 싶다.

아마도 그는 주체사상을 가지고 놀면서-물론 그는 주체사상을 연구했다고 하지만-대뇌의 사고를 즐기는 인간형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거두절미 한다면 주체사상은 김일성이가 자신의 권력독점과 그 유지를 위해서 만들어낸 사상이고, 

황장엽은 김일성과 그 아들 정일을 위해서 봉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황장엽은 주체사상은 자신이 체계화한 사상인데, 김일성과 김정일이가 그들의 우상화를 위하여 악용했다고 강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강변한다고 할지라도 내게는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황장엽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사변적이고, 이론적이고, 더 나아가서 공상적이며 

그 정도는 좌파에서 공산주의 쪽으로 기울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짙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러이 발견하였다.

그러니 실재와 괴리된 그들의 생각만으로써 어떻게 세상을 바로 잡아 나가겠는가. 그들은 매사에 이론을 앞세운다. 

그리고 그 이론을 가지고 서로 투쟁하고, 상대방의 말을 꼬투리 잡아서 숙청하고, 결국은 독재자로 전락하게 된다.

사회주의자들의 자아비판이라는 것도 그런 풍토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과거 소련과 중국은 교조주의니, 수정주의니 서로 비난하면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였는데

북한의 주체사상도 그 논쟁의 틈바구니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도대체 사상이라고 할만한 것도 되지 않고,

백보 양보하여 사상이라 하여도 얼치기 속빈 강정 같은 사상인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책에 대한 투쟁은 있어도 사상에 관한 투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라는 것은 본래 사상이 아니고 자연적인 현상이며, 

다만 그것을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의 특기는 비판이고, 비난이며, 선전과 선동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능력이다.

실재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권력획득과 유지를 위한 투쟁뿐이다.

그들이 말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제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독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의 회고록에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김정일을 망친 것은 황장엽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황장엽은 김영주의 말을 부정하지만, 내게는 김영주의 말이 적어도 틀린 말을 아닌 듯하다.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최고의 지위를 긴 세월동안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17살 짜리 김정일이가 47세의 아버지 김일성이를 부축하면서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을 보고도 황장엽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렇게 아들 정일이는 아버지한테 아첨을 하였지만, 정일이가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는 아버지 김일성이는 참으로 어이없는 아첨을 아들에게 하면서 죽었다.

뒤늦게 이제와서 김정일이를 비난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장엽 자신도 일조를 한 사람이.


나는 황장엽의 망명 이유를 자신의 변명을 들어봐도,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알듯 모를 듯하지만 결국은 모르겠다.

그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용단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망명으로써 눈꼽만큼도 북한정권의 붕괴에 공헌한 바가 없는 것으로 안다.

본인은 김정일 정권을 흔들 수 있을 것으로 믿었는지는 몰라도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한다.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은 김정일을 제거하려다가 그것이 사전에 탄로날 것이 명백해지자 탈출을 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아니면 75세의 연로한 노인으로서 판단력을 상실했다든가.


그가 망명함으로써 아내와 아들은 연금되어 있는 중에 탈출을 기도하다가 발각되어서 총살당하고,

본인이 그렇게도 귀여워 했던 손녀들은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 어린 것들이! 아~!

그 뿐인가. 그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수천 명이 정치수용소에 감금당하거나, 아니면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그가 1+1=2라는 것은 모를 수는 있어도 그런 숙청을 예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차라리 평양의 김일성 동상 앞에 할복을 하는 것이 나았지 않았을까.


그는 남한땅에 1997년에 망명하였으나 자신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10년간 사실상의 가택연금상태로 지냈고

2010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여서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것은 그의 공적 때문이 아니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망명을

반김정일의 상징적 깃발로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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