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관념의 틀

박희욱 2018. 9. 18. 07:29

틀을 깬다는 것, 그것은 관념의 틀을 말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생각으로써 자신의 관념의 틀을 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깨고자 하는 관념이 곧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만 알고보면 생각은 하찮은 것이다.

기껏해야 다람쥐쳇바퀴 정도이고, 첫눈에 들어온 물체를 자신의 어미로 여기고 쫄쫄 따라다니는 오리새끼같은 것이다.


나는 수년전에 37일간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내가 싫어했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관한 공부를 조금하고나서 나의 반일사상을 일소하였다.

나의 반일사상은 거지가 자신의 가난을 재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4명의 내 아우들에게 그 당시의 국제정세와 조선의 실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는 아우는 없었다.

한참 설명을 하고나면 기껏해야 한다는 소리가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느냐는 식의 반발만 초래했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일본어과 교수들이 한일관계에 관한 말을 할 때면 그들의 말을 알아듣기보다는 일본어를 전공하면 친일파가 되는가 보다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 교수들은 슬쩍 말을 던졌을 뿐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길게 설명해 봐야 소용이 없었던 자신들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유명 미술관을 거의 모두 섭렵하였다. 

미술관을 순례할 때마다 현대미술관을 참새가 방아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혹시나 하면서 들리지만 번번히 실망하고 말았다. 

이제는 현대미술과 비엔날레 전시와 결별해야지 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결별할 생각이다.


내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미답의 유명 미술관은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이었다.

그래서 런던에 도착하자 큰 기대를 가지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그 미술관이었는데 기대만큼 큰 실망으로써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그 미술관은 여행서에 보면 세계 유수의 미술관으로서 많는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나의 관념이 잘못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나는 예술은 감성적인 것이라는 고전적이고도 고지식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관념미술로 전환해버렸는데 나는 관념의 세계를 혐오하고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현대예술과 친밀해질 수가 없다.


음악도 그렇다, 나는 현대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바그너의 음악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러나 바그너 애호가들은 바그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매우 안타까워 한다.

그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나의 음악에 대한 틀을 깨어야만 가능한 일인데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유럽에 첫 배낭여행을 갔을 때 한 가지 의문을 풀고자 했던 것이 피카소를 이해하는 것이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후 많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서도 쉽게 감응할 수 없었고, 그 자신이 말한데로 피카소를 어럿광대 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드디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의 '그트루드 스타인의 초상'과 마주치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비명소리를 내 손으로 막아야 했다.

그리고는 눈시울을 닦아야 했다. 그것은 그동안 피카소를 폄하했던 내 자신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틀을 헌신짝처럼 깨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간 용기 있는 예술가였다.

그가 스스로 자신은 어릿광대일 뿐이라고 했던 것은 겸손의 말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현대미술가 중에서 각광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앤디 워홀이 있다. 

알다시피는 그는 마릴린 먼로나 마오쩌뚱 같은 사람들의 사진으로써 미술품을 제작한 사람이다.

그동안 수많은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대면하면서도 나는 콧방귀를 끼었는데, 이번에 런던의 개인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의 틀을 깬 것은 나로서는 큰 소득이었다.


이를진대 자신의 관념의 틀을 깬다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올챙이가 웅덩이를 탈출하려면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져만 가능한 일이다.

헤르만 헷세는 그의 작품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라고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념들, 이를테면 민주, 평등, 행복, 신, 사랑 등을 비롯한 모든 관념들은 얼음처럼 단단히 굳혀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녹여서 물처럼 흘러보내야 할 어떤 것이다.

헤세가 말한 알을 깬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말이긴 하나 나와는 사뭇다른 면이 있다.

내가 틀을 깬다는 것은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계속 자신의 틀을 벗겨내는 것이다.

마지막 껍질을 볏겼을 때 본래부터 거기 있었던 텅빔이 되는 것이다.

그 텅빔은 시간과 공간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즉 시공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때는 시공도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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