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강에 올라온 고래

박희욱 2019. 9. 3. 03:03

어릴 때 나는, 겨울이 되면 눈꼽이 끼어서 눈을 뜨지 못하고,

입술이 부르켜 터서 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가끔 손가락과 귓볼에 동상이 생기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에 생긴 상처가 곪아서 아물지 못하고,

그리고 학교에서 빈혈증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서 수혈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내가 비록 동네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방앗간집 큰손자였지만, 나는 영양실조였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어찌 식빵에 버터를 발라먹고 치즈나 햄을 얹어 먹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어찌 내가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게 될 줄 알았을까.


세계인들은 독일의 라이강의 기적을 말했지만, 그것은 라인강에서 사라졌던 연어가 다시 돌아온 것에 불과하다면,

한강의 기적은 5천년 역사동안 한 번도 서식하지 않았던 고래가 나타난 격이었다.

그러나 그 고래가 한강에서 죽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서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비록 개인에 있어서는 개천에 용이 날 수 있지만, 국가에 있어서 과연 개천에 용이 날 수 있을까.

이 지구상에서 그런 용이된 유일한 나라가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분단된 나라에 주어진 미국과 일본의 음덕이 있었고, 미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배운 이승만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제대로 아는 박정희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인들의 헝그리 정신이었지 싶다.


대한민국 경제기적을 일구어낸 근대산업화의 씨는 누가 뿌렸을까.

그것은 500년 동안 켭켭이 쌓였던 조선의 적폐를 일시에 끝장낸 일제의 한반도 지배 덕분이었다.

조선 자체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했던 산업화의 길을 터준 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원망하고 자존심 상해하는 일제의 통치였다.

일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중앙아시아의 어느나라와 같은 처지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처럼 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본이 한반도의 근대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친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 한글의 문법체계를 정리한 것은 일제시대의 일본인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인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

한국어에는 품사의 명칭조차 없었는데 어찌 한글 문법체계를 정리할 수 있었겠는가.

밥먹을 때는 숟가락이 없어도 손가락으로 먹울 수 있지만, 문법을 정리하는 것은 그런 일이 아니다.

그렇듯이 공업용어를 비롯한 과학, 정치, 사회 등 모든 학술용어가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 용어 하나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일본인들은 우리에 앞서서 300여년 동안 노심초사 해서 창조해낸 것들이다.


이제, 국부 이승만 대통령은 멀리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에서 외로이 홀로 세상을 뜨셔서 이제는 미국의 괴뢰라는오명을 뒤집어 쓰고 계시고,

박정희 대통령도 흉탄에 맞아서 세상을 떠나서, 지금은 땅속에 누워서 다까끼 마사오라고 뱉어대는 침을 받아야만 하는 수모를 당하고 계시고,

미국과 일본은 삶은 소대가리 의도대로 대한민국에 등을 돌리게 되었고,

젊은이들은 헝그리 정신을 상실한 것이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니

우리가 일궈냈던 경제기적은 어찌 될 것인가.

나무가 죽으면 백골이 드러나듯이, 대한민국이 쓸어져서 드러나는 것은 무었일까.

그것은 우리의 민족성일 것이다. 지금 그 민족성이 표출되고 있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소대  (0) 2019.10.08
반일종족주의  (0) 2019.09.14
괴뢰  (0) 2019.08.30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려 하는가!  (0) 2019.08.18
행복의 정복  (0) 2019.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