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잉글랜드를 자전거여행 하면서 솔즈베리 대성당에 전시되어 있는 민주주의의 초석 대장전(Magna Carta)의 원본을 보았다.
그것을 보면서 잉글랜드의 풍요로운 들판을 상기하고,
그런 대장전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풍요, 즉 부(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프랑스 혁명도 부를 축적한 상공인들, 즉 부르주아지들의 신분상승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일본도 17세기 초 에도시대에 들어서서 부를 축적한 상공인들의 신분상승욕구에 의하여 신분차별이 흔들렸다.
그렇지만 일련의 이런 일들이 곧바로 근대민주주의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일반대중은 그대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이씨 왕조의 가산제국가였다.
그렇게 가난했기 때문에 역시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의, 사실상의 노예제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씨 조선은 백성을 잘살게 해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김구의 백범일지를 보면,
그가 중국에 망명해서 목격한 중국의 농기구를 보면서 왜 조선은 그런 농기구를 도입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것은 믿기 힘든 말이지만, 어느 경제학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단위면적당 쌀 소출량이 일본의 1/3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씨 조선이 미필적 고의로 백성들을 가난하도록 내팽개쳐 둔 것은 강력한 신분제인 노비제도가 흔들릴까 두려워 했던 것 같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농민들을 추켜세웠던 것은 단지 그들로부터 생산물을 착취하기 위한 구호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씨 왕조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오로지 종묘사직을 보전하는 것 뿐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이 부를 축적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오랜 전제국가로서 처참하게 가난했던 농노국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민주주의의 깃발을 높이 쳐든 공산주의에 의하여 무너지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가난한 소련도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었고 혹독한 공산당 독재를 경험해야 했다.
또 그 뒤를 잇고 있는 현대의 러시아 또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아직도 가난한 나라라는 것을 증명한다.
역시 가난한 국민으로서는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증거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인민이 부유해지기 전에는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진핑이가 독재개발을 재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벌이고 있는 중국인들의 민주화운동이 과연 조국 중국을 위해서 이로울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을 돌보지 않은 민주화운동에 의문이 가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가난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북한의 김정일은 300만에 이르는 인민이 아사하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에게는 공산당과 군이 있으면 걱정이 없다고 했다.
가난한 자일수록 노예로 부리기 쉽다.
작금의 이 정부는 경제성장은 차치하고 도리어 경제성장을 망치려드는 정책밖에 할 줄 모른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일까?
지금 이 정부는 일당독재의 틀을 잡고 있는 중인가?
그러면서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일으켜서 자신들의 정체를 그 뒤에 감추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감정적인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이 정부가 하는 짓을 직시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는 재앙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