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2년도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꼭 50년전의 일이구나.
그 동안 대학도 무척 많이도 변했을 것이고 지금의 대학은 나의 경험과는 딴판일 수도 있겠다.
돌이켜 보면, 대학 1학년 때는 교양과정이라 전공과 관계가 없다고 여겼고, 게다가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시달리다보니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고 싶은 욕구와
해방되고자 하는 심리에서 학업에 무척 소홀히 하면서 지내버렸고,
2학년 때는 군입대 전이라 또 학업에 소홀히 하면서 보내버렸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대학가의 소요사태로 인하여 휴교령이 내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군복무 3년후, 3학년에 복학고서는 취업공부와 기사자격시험에 몰두하면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기사자격을 4개를 취득하고 무사히 취업을 하고 졸업했으나 대학생활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의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취미 하나 습득하지 못하고 허송한 대학1,2학년 때가 너무 아쉽다.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졸업생 중의 15% 정도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때라
희망에 부풀어서 대학에 입학을 했으나 졸업할 때 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앞날의 삶에 대한 고뇌를 하면서 고통스럽게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것은 자유스러운 삶에 대한 나의 욕구가 남달리 컸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많은 교양과 전공지식을 배워서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는 배울 것이 너무나 많고,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목도 전공에 대한 교양의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학 재직시에 입학생들에게 교수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가르쳐 줄 것이라고 믿지 말라고 주의를 주곤 했다.
나는 이공계라 역사, 특히 국사에는 흥미와 관심이 없었고, 제일 싫어한 과목이 국사였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우리의 국사는 무척 왜곡되어 있다고 본다.
특히 근현대사는 왜곡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인데다가 교통이 매우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간의 교류가 적어서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못하고 지역에 기반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편협한 면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아전인수격이고 내로남불이며 아시타부의 습성이 많이 남아있어서 이것이 국사에도 나타나고
나아가서 이런 성향이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유지에 장애가 될 것이다.
한국의 국사가 이렇게 왜곡 되어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나는 역사학자들의 능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역사를 연구하려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고
고대사를 연구하려면 몽골어도 알아야 할 것이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역사학자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의심이 된다.
다행히 요즘은 외국어 능력이 되는 젊이들이 있어서 외국인 저작들이 번역이 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인문학의 요체는 언어능력이다. 그리고 인문학자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이 필수이며, 그 능력은 다독에서 나온다.
아무튼 인문학을 하려면 언어능력과 많은 교양이 있어야 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대학에서 왜 교양과정이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대학 4년은 결코 길지 않고 너무 짧기 때문에 촌음을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
대학생활이 좋은 것은 인생에 있어서 그나마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보니 쉬운 것이 없다.
내가 지금 클래식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까마득하다.
어쩌면 석박사 5년보다 더 힘들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한다.
인생은 그렇게 하나 둘씩 파고를 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혜원이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이 인생의 뿌리가 된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대학생활 4년은 인생의 기둥이 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을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적 성장에 있다.
흔히들 말하듯이 행복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