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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박희욱 2022. 12. 3. 19:19

                          붉은 튤립의 비창(Pathethique)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년~1920년)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의 사망으로 인하여 가세는 급락하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하고 결핵까지 앓아서 병약했던 그는,

모딜리아니의 소질을 알아차린 외조부의 도움으로 일찍부터 미술공부를 하였다.

 

그는 1906년, 22세 때 프랑스 파리로 옮겨서 화가로 할동하다가  36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일생동안  314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하니 짦은 생애를 생각하면 많은 작품을 남겼다.

나는 전세계의 수많은 미술관을 섭렵하였지만, 조르주 루오의 경우처럼

그의 작품을 마주치기란 극히 드물어서 감상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아마도 저택에 개인이 소장하기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미술관에 내놓지 않기 때문이지 싶다.

마침내 뉴욕의 유태인박물관에 들렀다가 마주친 모딜리아니 특별전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의 작품은, 고흐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림이 팔리지 않으니 생활은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의 그림 

'누워있는 누드'가 2015년 뉴욕크리스티 경매에서 거금 $1억7천 40만에 팔렸다니

어쩌면 이렇게도 세상의 인간들은 변덕스러울까! 참으로 안타깝다.

 

모딜리아니는 건강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지만

주변사람들이 모두 인정할만큼 대단한 외모, 그리고 함께 어울렸던 파블로 피카소도 인정했던

센스있는 패션으로써 여러 여인들과 문란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33세의 모딜리아니는 그의 그림모델이 되어주었던 19세의 잔느 에뷔테른을 만났다.

유복한 집안 출신의 잔느는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있던 미모의 재능있는 학도였다.

둘은 곧 열렬한 사랑에 빠졌지만 잔느의 부모들은 빈궁하고 방탕한 모딜라니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끝내 결혼을 반대하였으나 잔느는 모딜리아니를 선택했다.

도리없이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함께 동거생활을 시닥했으나 무일푼의 그들은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서 결국 잔느는 어린 딸과 함께 친정집에 몸을 의탁해야만 했다.

 

결국, 병약한 모딜리아니는 병원에 입원한 며칠 후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그의 죽음에 오열하던 잔느는 이틀 후에 오빠의 감시가 소홀한 틈에

끝내 친정집 5층 창문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해버린다. 그 당시에

잔느가 낳은 딸은 불과 14개월이었으며, 더욱 가슴아픈 것은 임신 8개월의 만삭의 몸이었다. 

잔느는 죽기 전에 칼로써 자살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으니

그녀는 일찌기 모딜리아니와 함께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잔느는 어찌하여 방탕아 모딜리아니를 버리지 못했을까? 

그녀의 미술적 소양이 모딜리아니 예술영혼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14개월 된 딸을 두고 뱃속의 아기와 함깨

어찌하여 자신의 몸을 창밖 아래로 던져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모딜리아니의 자포자기식 방탕은 어디서 연유된 것이었을까?

아마도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36세에 어떻게 314점의 많은 그림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애절한 집착에서 비롯된 투혼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35세에 요절한 모짜르트처럼 그의 요절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모딜리아니는 차라리 비극에서 피어오른 한송이 붉은 튤립이었다.

 

잔느의 부모들은 딸의 합장을 완강히 거부했으나 수년이 지난 후

모딜리아니의 형의 간절한 요청으로 뒤늦게 합장되었다.

그당시 14개월이었던 딸을 모딜리아니의 누나가 양육을 하면서

비극적인 부모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딸이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 모딜리아니의 전기를 집필하였다.

그의 일대기는 2004년도에 작품명 'Modigliani'라는 이름으로 영화로 제작되었다.

사실로 그의 일생은 비극의 영화보다 더 비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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