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조선말기에 조정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일으킨 1882년의 임오군란,박영효가 주도한 1884년의 갑신정변최재우에 의한 1894년의 동학란, 등의 저변에는 공통적으로,일부 한국인들에 의해서 국모로 추앙받는 명성황후의 제거가 그 목적이기도 했다.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마지막에는 1895년에 대원군이일본공사 미우라에게 민비제거를 부탁했다.그리하여 대원군이 대동한 일본의 지식인들과 함께 경복궁까지 진입해서결국에는 일본 낭인들의 손에 살해되었다. 이때 조선의 훈련대도 민비시해에 동참하였다.이것이 1895년도에 발생한 을미사변이다. 동학란이 발생하자 민비가 청군을 끌어들임으로써 1894년에 청일전쟁이 일어나고,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은 500년간에 걸친 중국의 속국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리고, 1904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