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나무와 숲과 산

박희욱 2024. 3. 15. 09:31

좋은 산은 어떤 산일까?

좋은 산이란,

산속이 아름다운 산이라기 보다는 산에 올랐을 때 원경이 아름다운 광활한 산이다.

숲만 보고 산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산에 올랐을 때의 광할한 원경이다.

사람들이 높은 산을 찾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나는 뉴질랜드의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루아페후산을 오르면서 의아스러워했다.

이게 무슨 국립공원인가 하고. 그러나 산에 올라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멀리 보이는 원경이 매우 빼어났다.

내가 설악산보다 지리산을 더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 중에는 사물에 현미경을 갖다 대고 보는 이도 있고,

반대로 멀리 떨어져서 보는 사람도 있다.

사물의 진실을 알려면 멀리 떨어져서 볼 수록 좋다.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관경으로 본다는 것이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사진을 촬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주제에 집중하지만

그래서는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고,

주변 환경과 연관지어서 그 주제를 파악해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그림을 그릴 때도 그 원리는 마찬가지다.

 

나아가서 역사적 사건을 볼 때도 사진촬영의 경우와 동일하다.

부분에 집착해서 사건을 보게 되면 그 사건의 진실을 볼 수 없게 된다.

좌파들은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사건을 눈에 갖다 대어서 보려고 한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4.19의거를 통해서 이승만을 보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이승만 옷자락의 얼룩을 보고 이승만을 알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전태일의 분사를 통해서 박정희를 보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주열이를 통해서 이승만을 보려고 하고,

전태일을 통해서 박정희를 보려고 하는 것은

좌파들의 특기인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그들은 숲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서 산을 보려고 하니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

김주열이는 시골에서 올라온 불운한 어린 학생이었고,

전태일이는 빨갱이들에게 이용되어 죽임을 당한 무지한 청년에 불과했다.

그런 아이들이 열사가 될 수 있는 풍토가  대한민국이다.

 

사람이 성숙하고 현명해진다는 것은 사물을 자세히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되도록이면 사물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멀리 멀리 떨어져서 종래에는 시야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 것이다.

성인이란 그들의 시야에서 세상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이다.

부처가 그렇고, 노자가 그렇고, 예수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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