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김형석 교수와 나

박희욱 2024. 8. 15. 06:24

오늘 새벽에 TV화면에 언뜻 김형석 교수가 나타났다. 나는 김교수에 대해서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대학1년 때 그의 저작을 한권 읽었을 뿐인데, 주로 신앙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김교수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의 강연을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내가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앙을 권유하거나 아니면, 사랑이니, 행복이니, 사회와 국가에 대한 봉사니 하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다. 구태의연한 주제이고 별로 신선한 느낌이 없는 내용이었다.

올해 104세인 김교수는 90세가 되어서야 늙었슴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신체가 늙었다는 것이고 정신은 늙지 않았다고 했다. 정신이 늙었다는 것은 자신의 성장이 멈춘 것이라고 하는 김교수의 말에 동의하면서, 나도 희망이 생겼다. 나는 죽기 전에 책 한권은 집필해야겠다는 소망이 있는데, 90세 이후로 미뤄도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김교수는 100세가 넘어서 어느 대학으로부터 상을 수여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사의를 표했다고 한다. 과연 무슨 명목으로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단체로부터 상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격이 딱 하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데, 그것은 평생 살아오면서 고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104세에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다는 김교수와는 달리, 나이 고작 54세에 일을 버리고 자유인으로 들어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누가 믿겠으며, 차라리 욕을 얻어먹을 말이지만, 나의 인생도 힘듦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랄 때도 그러했고, 공부할 때도 그러했고, 군복무도 그러했고, 그나마 직장 생활할 때는 좀 낫기는 했지만, 재임용 논문, 승진 논문 퍼센티지 맞추는 일도 버거웠고, 이것이 싫어서 사직서를 낸 이유 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결코 돈버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들다. 조깅하는 것도 힘들고, 여행하는 것도 힘들고, 중단해버린 그림도 힘들었고, 되지도 않는 기타연습은 마치 빛이 나지 않는 기왓장을 기약없이 갈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나의 세계여행을 대견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아무나 견뎌낼 수 없는 고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67세에 기타를 시작했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당신은 기적이라고 했다. 잘 친다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포기하지 않은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아직도 제대로 치는 곡이 하나도 없으니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김교수와 나의 고생이 다른 점은, 김교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고생은 이타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족,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고생이란 말이다. 역시 봉사정신의 기독교인 다운 말이다. 어쨌던 상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에 반해서 나의 고생은 단지 나 자신만을 위한 고생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김형석 교수가 들으면 불쾌할지 모르지만, 김교수는 행운이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인품과 학식과 위치를 모두 확보한 분이니까 하는 말이다.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위한 고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시간도 부족한데 어찌 타인을 위해서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타적으로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또 능력도 없다.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쁜 사람이다. 이것이 대인과 소인의 차이인가 보다.

오늘 아침의 단상이다.

 

https://youtu.be/IU5x-wJH2ao?si=1J05dQk5Z704iY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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