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도에 2개월간의 미국전역 21,000km 렌트카여행을 계획하면서
미국이 왜 발전했는지 그 원인을 알아보았는데, 그것은 젊은 노동자들의
유입이라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전체인구 중에서 생산능력을 가진
노동자인구의 구성비가 컸다는 말이다. 그에 한가지 원인을 더 보탠다면 근면성실의
청교도 정신을 꼽았고, 이것은 후에 미국으로 이민간 어느 교포가 확인해 주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한가지를 더 첨언할 것이 있다.
홀홀단신으로 이민간 사람들은 아무 지인도 없는 낯선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눈치 저눈치 볼 것 없이 죽어라고 일을 했을 것이다. 조선인들처럼 머리에 갓을
써고서 체면차릴 것도 없고, 바지가랭이 줄을 세워서 폼을 잡을 이유도 없고,
낯짝에 분 바를 일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남이사 어떻게 살던 간섭할 이유도 없고,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 일하는 것만큼 부가
창출되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으로 되어버린 것이라고 보아진다.
반면, 이땅에서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꼼짝달싹 하기도 어려운 경직된 사회였다.
사농공상, 남녀성별, 나이, 혈연위계, 지연, 학연, 등으로 얼켜서 서로 눈치보는 사회였다.
미국이 완전한 개인주의 사회라면 이땅은 집단주의 사회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도 바로 집단주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만일, 시민정신, 즉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 책임을 다하는 사회라면 북조선은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좌경화가 되어가는 것도 한민족의 정신인 집단주의 정신으로의
회복으로 보인다. 남조선에도 미국인 이승만과 미국의 후광이 스러져 가자 한민족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에 영리한 좌파들이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한 것은 화룡점정의
작명이었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망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각자도생의 사회만이 망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나는 1990년도에 유럽을 35일간 배낭 여행하면서 서양이 동양을
앞선 이유가 자유경쟁에 있다는 사실을 첫 방문지 영국 런던에서 담박에 알아차렸다.
작금에 이르러 한국인들은 치열한 자유경쟁에서 힘겨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에 이탈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지만, 한국인들은 그것이 쉽지가 않다.
경쟁의 대열에 낙오하기는 쉽지만, 이탈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이웃을 곁눈질 하고 비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차에 어께동무하고 슬슬 걸어서 가자고 하면 누가 싫어하겠는가. 북조선이나
남조선이나 지나간 이씨조선의 그늘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무튼,
민족성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전세계를 둘러보면 명약관화한 일이다.
개인도 바뀌지 않는데 하물며 민족성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