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리적 측면
하루살이는 종류에 따라서 짧게는 몇시간, 길게는 16일간 사는데 대하여, 거북이는 한 200년 정도 산다는군요.
그래도 하루살이는 자신의 수명이 무척 짧다는 것을 의식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놈을 불쌍히 여길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거북이 또한 자신이 오래 산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살이와 거북이에게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그들 둘을 비교여 거북이가 훨씬 오래 산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시간을 의식하며, 시간이라는 것이 실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생각의 덩어리)이 없는 존재들에게는 시간이란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마음이 있는 존재들에게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란 마음의 한 현상인 것입니다.
시간이란 과거, 현재, 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으로서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 또한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뿐입니다. 그러면 이 순간이라는 것이 시간일까요?
시간이라면 그 길이가 얼마입니까? 0.1초? 0.01초? 아니면, 0.001초? 아니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마음의 현상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영원이라는 것도 시간일까요? 그것이 시간이라면 그 길이가 얼마입니까? 100년? 1억년? 100억년?
아니지요! 영원 또한 시간이 아닙니다. 순간과 영원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을 넘어선 어떤 것이지요.
초등학교 때 본 어떤 영화의 제목이 '순간에서 영원으로'이었습니다.
그것의 내용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 리는 없지요.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기억납니다.
즉, 전투기 조종사가 해안의 절벽으로 돌진하여 폭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절벽에 충돌하는 순간에 영원으로 사라진다는 애기가 아닐까 합니다.
말하자면 순간과 영원은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백양산에 라이딩 갔을 때 동참했던 대한민국님의 후배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자기는 중앙선을 침범해오는 택시에 받혀서 정강이가 90도로 걲여버리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 사고의 찰라적 순간에 '아! 나에게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구나!',
'내가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과거에 겪었든 모든 일에 대한 생각이 한 순간에 머리속에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에는 부상부위에 통증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 통증이 없었을까요? 통증은 마음의 현상입니다. 그는 그 순간 마음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그가 '생각했다'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그것은 생각이 아닙니다. 의식입니다.
말하자면 의식하였던 것이지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정지하면 생각이 정지하고, 생각이 정지하면 시간이 정지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정지한 순간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에 살아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삶에 있어서 시간이라는 관념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또한 마음을 비우고 살아라고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즉, 무심으로 살아라는 뜻입니다.
마음과 시간은 동의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천국에는 사람들이 날개를 달고 있어서 자전거도 필요없지만 시계 또한 필요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영원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없고 마음도 없는 곳, 그 곳이 천국입니다.
사랑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에는 시간과 마음이 사라지고, 너와 내가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의 순간에는 사랑한다고 말할 '나'가 사라져버리고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시절에 보았던 영화 'Love story'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Love means not to say I am sorry' 번역하자면 "사랑이란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옳은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미안해할 나도 없고, 용서할 너도 없기 때문입니다.
2. 물리적 측면
시간이 심리적으로 마음의 한 현상일 뿐이라 할지라도 물리적 시간은 실재하지 않느냐고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가 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물체의 운동과 상태의 변화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패러미터(매개변수)일 뿐이라고 봅니다.
수학용어가 조금 어렵지요? 그러면, 느림보 거북이를 생각해 봅시다.
거북이의 주행속도가 0.1km/h라고 할 때, 우리는 시간 h의 개념을 사용해서 거북이의 운동(이동)상태를 나타내는 것일 뿐
시간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지도상에는 북위 38도선이 있지만, 실재로 그곳에 가 보면 철조망이 있을 지언정 그러한 선은 실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리적인 시간 개념은 대단히 유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토끼와 거북이의 주행속도를 시간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비교하자면,
두놈을 출발선상에 놓고 경주를 시켜서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달린 거리를 비교해 보면 주행속도의 차이를 확연히 비교할 수 있겠지요.
이럴 때는 시간개념이 불필요합니다만 실행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개념을 사용해서 토끼와 거북이의 각각의 주행속도를 측정하여서 비교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두 놈의 주행속도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시간'을 찾아서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 개념이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저도 이해 못하는 것을 전달할 수는 없군요.
아인슈타인에게 시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그는 시간(time)이라는 것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또, 공간(space)이라는 것도 없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시공(time-space)이 있을 다름이라고 하겠지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은 공간에 따라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것이며, 공간 또한 중력에 따라서 구부러졌다, 펴졌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공(time-space)라고 해야 옳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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