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쿠시나가르

박희욱 2010. 10. 30. 23:25

10월 17일

기원정사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으나 잘못되어서 쿠시나가르로 바로 가게 되었다.

 

쿠시나가르 가는 길

 

룸비니에서 바이러와로 가는 버스

폐차장으로 가기에는 너무늦었다.

 

 

바이러와에서 네팔국경도시 소나울리로  가는 짚차 위에서

앞쪽은 중국 광주에서 온 배낭여행자 - 여행이 어려워 보일 정도로 영어가 서툴렀다.

 

 

 

 

시장에 팔려가는 송아지 2마리

 

 

네팔-인도 국경

네팔이민국에서 출국신고를 하자니 나의 비자는 유효기간 15일을 넘어서 있었다.

연장비 $30와 3일간의 챠지 $12 도합 $42를 지불하여야 했다.

양국민은 아무런 절차 없이 서로 드나든다.

 

 

소나울리에서 기원정사로 가는 길을 물어보니 프렌다라는 곳에서 버스를 갈아 타야 한다고 해서 그곳에서 하차했으나 잘못된 것이었다.

이미 날이 저물어 가기 때문에 당일에 기원정사를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고락푸르를 거쳐서 바로 쿠시나가르고 가기로 하였다.

 

고락푸르로 가는 8인승 짚차

인도의 차들은 고무풍선처럼 늘어난다.

사람을 자꾸 태웠지만 인도인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내가 고함을 질러서 출발하였는데 그때는 이미 어린아이 7명을 포함하여 23명이나 승차한 후였다.

 

 

네팔과 인도에서의 승객은 짐짝보다 못한 신세이다.

 

 

사진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비오는 날 이 모습을 보면 생지옥 처럼 느껴진다.

 

 

인도에는 하수도 시설이 미비하여 비가 조금만 와도 이렇게 빗물이 고이고

모기가 극성이다.

 

 

고락푸르에 내려서 쿠시나가르행 버스 정류소로 가는 길의 사이클 릭샤

 

 

고락푸르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쿠시나가르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걸어서 한국인 사찰 대한사를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니 스님 차림의 현지인이 나왔다.

숙박을 부탁하였드니 모기가 가득한 형편없는 방을 주었다.

한국인 스님은 잠시 귀국해 있었고, 사찰인지 뭔지 대단히 을씨년스러웠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서 실망이 컸다.

 

10월 18일

쿠시나가르는 부처님이 열반한 곳이다.

예상과는 달리 한국인이라고는 대한사에 장기 체류하고 있는 박광천 씨 밖에 없었다.

 

 

 

 

 

 

 

 

 

 

 

 

 

좌측 돔은 부처님의 유골을 묻은 곳이라 하며, 오른쪽은 와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싯다르타, 그는 이미 생전에 인간이 아니었다.

 

 

 

 

 

 

 

 

 

 

 

 

 

 

돔의 오른쪽 검은 곳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메인 템플 옆의 버마 사원 스투파

 

 

 

 

 

 

 

 

인도에서는 자람들이 짐승처럼 살고

짐승들이 사람처럼 사는 것 같다.

짐승들만이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것 같다는 말이다.

 

 

 

 

 

 

 

 

좌측이 대한사 입구이다.

 

 

대한사

인도와 네팔에서는 무엇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두번 다시 그것에 손을 대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것이 고장나 있거나 망가져 있거나 하고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없을 정도다.

한국 사람도 이곳에 오면 이 풍토에 감염되는 것 같다.

 

 

 

인도에서는 낳아 놓기만 하면 저희들 끼리 이렇게 어울려서 커간다.

양육이란는 것이 별로 필요없다.

 

 

아침 일찍 쿠시나가르의 메인 템플을 구경하고나서 쿠시나가르는 더 이상 별 볼일이 없을 것 같아서 

대한사로 돌아와서 배낭을 꾸린 다음에 막 나오는데 2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던 박광천 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엊저녁에 그를 보았는데 젊은 상좌들과 식사를 하면서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어쩌면 한국말을 그렇게 잘 하느냐고 하니까 "어쩌다 그렇게 됐시다"는 퉁명스런 대답을 해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도움으로 쿠시나가르를 제대로 안내 받아서 구경하게 되었다.

 

그는 인도 럭나우의 푼자(빠빠지) 밑에서 2년 동안이나 있었어도 그 때는 그가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했고,

'빠빠지 면담록"을 쓴 데이비드 가드먼은 싸이코였다는 말도 했다.

푼자는 의사의  만류에도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 하고,

그의 마지막 임종의 말은 "Where is Buddha?"였다는 것을 도반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한다.

박광천 씨는 인도 특히 북인도를 장기간에 걸쳐서 여러번 여행을 한 것 같았다.

달라이 라마도  친견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티벳인들 중에서 누가 깨달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잠시 침묵을 지킨 다음에

"밀라레빠"라고 했다 한다.

 

 

 붓다가 최후의 목욕을 했다는 하천

 

 

 

 

 

 

 

 

저 사람은 5년째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묵언이 침묵으로 이어질까?

 

 

 

부처를 다비한 곳

 

 

 

 

 

 

 

 

 

 

 

 

 

 

 

 

 

 

 

 

 

 

부처의 사리를 8등분하여 나눠 가진 곳

그의 법력이 엄청났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박광천  씨와 함께 시간을 떼웠다.

 

 

 

 

 

달팽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침을 흘리겠지

 

 

 점심식사를 한 곳

왠만한 비위가 아니면 음식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

 

 

 부처님이 열반한 위치

 

 

 저녁식사를 한곳

대부분의 식당 바닥은 울퉁불퉁한 흙이다

흙바닥이면 청소를 안해도 되고, 물을 흘려도 괜찮고, 증발효과에 의해서 온도상승을 막을 수 있고,

보수도 불필요하고, 돈도 안들고 등등의 좋은 점이 있는가 보다.

 

이날 밤은 한국사에서 그 곁의 인터내셔널 게스트하우스로 옴겨서 잠을 잤다. 300루피.

대규모 게스트하우스 였는데도 불구하고 투숙객은 나혼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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