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돌아온 카트만두

박희욱 2010. 11. 1. 08:30

10월 23일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10월 26일로 귀국날짜가 잡혔다고 했다.

하루빨리 귀국하고 싶었으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 하루는 캐시미어 스웨터를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다녀 보았다.

그러나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나로서는 진짜를 도저히 구분해 낼 수가 없었다.

카트만두에서 캐시미어를 사려고 한다면 십중팔구는 속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예 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상인들은 나보다 몇 수 위에서 놀고 있었다. 하품을 상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기도 했다.

 

 

카트만두 네팔짱의 내 방

 

 

10월 24일 

  한전KPS주식회사 인도 질수구다 현장에서 기계담당 매니저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도용진 씨(do3156@kps.co.kr)가

3,000루피에 8시간 동안 택시를 대절해 놓았는데 1,000루피를 부담하고 함께 관광을 하자는 제안을 해서 선뜻 응하였다.

www.jiri99.com

 

박타푸르 더러바르(궁정)

지난번에 자전거로 여기에 왔을 때는 입장료(750루피)가 비싸서 발길을 돌린 곳이다.

구경하고 보니 굳이 돈을 들여서 여기를 관광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오히려 파트나 더르바르(200루피)의 조형미가 더 낫다.

카트만두, 파트나, 박타푸르가 서로 경쟁하면서 더러바르를 건축하였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고맙다거너 미안하다는 말을 모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용진 씨가 확인하여 주었다.

모든 것을 전생의 업으로 돌리는 그들에게는 당연할지 모를 일이다.

 

 

 

 

 

 

 

 

인도인들은 의리나 정이라는 정서가 부족하단다.

조금만 대우가 나은 직장이 있으면 그 쪽으로 옮기기 위하여 이력서를 항상 뒷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한다.

 

 

 

 

 

 

 

 

 

 

 

도용진 씨, 45세라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이다.

인도 오리싸주 부봐네스와르(나도 지난번에 방문한 곳이다)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ABC트레킹을 하기 위하여 카트만두로 들어 왔다.

www.jiri99.com

 

 

 

 

 

 

 

 

 

 

 

 

 

 

인도인들은 머리가 좋아서 하나를 가르쳐 주면 둘을 알 정도라 한다.

그러나 일의 마무리가 좋지 못하고 지시한 것 외에는 뻔히 해야할 일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산촌다람쥐 사장님도 인도인들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말해주는 전화번호를 정확히 기억한다고 한다.

 

 

 

 

 

 

 

 

 

 

 

 

 

 

 

 

 

 

 

 

 

 

 

 

 

 

 

 

 

인도에는 아직도 여성에 대한 학대가 심한 모양이다.

 

 

 

 

 

 

 

 

산촌다람뒤 사장님께 물었다.

네팔의 몽골리안과 인도아리안 중에서 어느쪽이 더 우수한가?

대답은 단연 인도아리안이 뛰어나다고 했다.

정부의 관계는 모두 인도아리안족이며 해외근로자시험을 보면 전부 인도아리안들이 합격한다고 했다.

 

 

 

 

 

 

 

 

 

 

 

 

 

 

 

 

 

파탄 더러바르

 

 

 

 

 

 

 

 

 

 

 

 

 

 

모델비를 안준다고...

 

 

 

 

 

 

 

 

 

 

 

 

 

 

 

 

 

 

 

 

 

 

 

 

 

 

 

 

 

 

 

 

 

 

 

 

 

 

 

 

 

 

 

 

 

 

 

 

 

 

 

 

 

 

 

 

퍼슈퍼티나트 사원과 화장장

 

 

 

 

 

 

 

 

 

 

아랑곳 하지 않고 목욕중인 꼬마

 

 

 

 

 

 

 

 

 

 

 

 

 

 

 

 

 

 

 

 

 

 

 

 도용진 씨!

사진 가져 가세요.

 

 

 

 

 

 

 

 

아내와 마지막 작별을 하고 있다.

그리고는 연기속으로 사라진다.

 

 

죽음은 본래 위치로 되돌아 가는 것

 

빈센트 반 고흐는 권총자살을 시도했는데 정통으로 심장을 겨누지 못하여

동생 테오가 파리에서 달려올 때까지 숨을 거두지 못하고 고통을 감내하여야 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서툴까!"

"부탁이니까 울지 마! 이게 우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야.

슬픔은 영원히 남는 거야.

나는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영화 '대부'에서 알카포네는 임종의 말을 이렇게 남겼다.

"인생은 참 아름다워라!"

피와 폭력의 삶을 산 그가 한 말로서는 의외다.

대본 작가는 '아름답다'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그것은 삶에 대한 강한 긍정를 표현을 할 것일 게다.

그 긍정은 이분법적인 긍정과 부정의 긍정이 아니라 그 둘을 넘어선 긍정이다.

 

 

 프랑코 왕국의 카를로스 대제는 의사들에게

"나를 그냥 내벼려두게.

당신들의 치료약 없이 그냥 죽는게 낫겠어!"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아무말도 하지 않으련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말문을 닫은 그는 7일후에 숨을 거두었다 한다.

그러니까 침묵이 그의 유언이었다.

 

 

이 꼬마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관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화장이  일상적인 것이므로 천진난만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우리의 삶에도 죽음이 일상적으로 스며있다는 것을 알라.

삶은 탄생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의해서 유지된다.

 

 

죽음을 모르고서는 삶을 알 수 없고,

삶을 모르고서는 죽음을 알 수 없다.

 

 

정복자 알레산더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며 미지의 땅 인도펀잡지방까지 쳐들어갔다가

거기서 부하들의 반대로 침략의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그러했던 그도 31세의 젊은 나이게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폭음이 죽음의 원인이었던 그는 51잔의 포도주를 한꺼번에 마시고 열흘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추종자들이 알렉산더에게 후계자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후손이 없었던 알렉산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왕국이 탐나는 자 중에서 가장 강한자가 가져가라!"

그의 사후 왕국은 즉각, 부하들에게 4등분되었다.

 

서양인들은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울지 모르나,

그의 세계정복은 한 낱 꿈에 불과하고

그가 한 일은 술주정벵이가 한 난동과 다름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네팔짱

 

 

 

 

 

 

 

이번 여행에서 오며 가며 8박을 하게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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