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인도를 떠나면서

박희욱 2010. 11. 1. 19:47

  이번 여행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뷸교성지 순례가 되어버렸다. 뜻하지 않게 불교 4대성지를 모두 둘러본 셈이다. 즉,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 깨달음의 땅 보드가야, 최초의 설법지 사르나트, 열반의 땅 쿠시나가르이다. '97년도에 사르나트를 방문한 것도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바르나시를 방문했다가 가까운 곳에 사르나트가 있어서 들러본 것이었다.

 

  이번에도 불교유적지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좋은 도반이나 스님을 만나면 먼 이국 땅에서 격의 없는 만남을 통하여 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서 방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콧배기도 보지 못했고,  그런 기대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약간의 희망을 가졌던 보드가야에서의 명상도 전혀 분위기가 아니어서 아예 국제명상센트에는 들러지도 않았다.

 

  이제 나는 아무에게도 기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푸네의 라즈니쉬 리조트나, 아루나찰라의 라마나스라맘에 들린다 하더라도 무엇을 얻겠는가. 설령 내가 부처를 만나도 또는, 예수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들로부터 무슨 말을 얻어 듣겠는가. 길은 오직 하나, 물결이 일렁이지 않는 나의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리라.

 

 

 

 

  여행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한반도가 지구상에 가장 좋은 곳 중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곳에 살아보지 않았지만 한반도 보다 자연환경이 더 좋은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여행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도 대체로 인성이 다른 외국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좋은 것 같다. 어쩌면 윤리와 도덕에 바탕한 유교사상이 긍정적으로 작용한지 모르겠다.

 

  네팔은 국가발전의 측면에서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연환경, 자원, 정치, 사회 등, 모든 측면에서 힘들어 보였다. 인간성 측면에서도 단정적으로 매도해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에게는 도대체 인격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여성도 있었다. 가난했던 6.25직후에는 우리나라에도 얌생이 모는 시절이 있었지만 차원이 좀 다른 것 같다. 그들의 신앙은 단지 형식에 불과한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종교가 기복신앙에 불과하고 하나의 생활문화일 뿐이다.

 

  이번에 여행한 인도 비하르주의 형편은 한마디로 비참하였다. 13년전에 인도를 경험한 나도 견뎌낼 수 없어서 여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인도가 비참하다는 나의 말에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참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비참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똥통속에 들끓는 구더기도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은 모른다고.

  네팔 카트만두를 탈출하는 기분으로 인도 비하르주로 넘어 갔으나, 인도 비하르주에서도 탈출하는 기분으로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나는 인도는 이쁜 구석이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오리싸주에서 3년을 거주하고 있는 도용진 씨도 마찬가지의 말을 하였다.

  인도를 나올 때는 다시는 인도땅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북인도 캐시미르 지역과 인도히말지역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

 

  카트만두 네팔짱에서 만난 어느 분이 말했다. 일본 사람은 和의 민족 답게 의리를 따르고, 빈번한 정변으로 권력을 신뢰할 수 없었던 중국사람은 실리를 따르고, 한국 사람은 윤리도덕에 바탕한 옳고 그름에 따른다고 했다. 옳은 말인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인의 좋은 인성에도 문제점은 있는 것 같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객관적이라기 보다 자기편향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인성이 사람을 흑백논리적으로 만들고, 나아가서 내편 아니면 적이라 여기고, 결과적으로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보아진다.

 

  포카라의 산촌다람쥐 사장님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셨는데 이런 목격담을 말해주었다. 케냐 나이로비에는 7군데의 중화식당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군데가 영업상태가 좋지 못하자 나머지 6군데 중화식당 주인들이 의논하여 식당문을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은 그 식당이 정상적인 영업상태가 되자 다시 문을 열더라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한국인들은 반대로 서로 반목하고 질투하여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파싸움을 그 예로 드는 한국인의 분열과 반목적 심성은 부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이 한반도 땅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네팔과 인도를 보고서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주의 즉, 소위 말하는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또는 대중민주주의는 유해할 뿐만 아니라 추악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나는 이 여행을 마치면서 또 하나의 희망을 가진다. 그것은 포기했었던 안나푸르나 서킷을 자전거를 가지고 일주하는 것이다. 거리 230km인 이 루트의 최대 고비는 배낭과 함께 자전거를 어께에 매고서 5,416m 높이의 토롱라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이다.

 

  내년에 다시 안나푸르나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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