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신의 정체

박희욱 2010. 12. 31. 13:23

삼라만상은 마치 거대한 대양과 같이 넓고 아득하다

전체의 한 부분이 전체를 알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대양의 한 파도와 같이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삼라만상 전체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삼라만상은 언제나 신비롭고, 신성한 신비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1

 

인간은 이러한 삼라만상의 신성한 신비를 육화하여 거기에 신이라는 말을 붙였다2

일단 신이라는 말이 창조된 다음에는

그 신이라는 말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하여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었으며

그 신은 점점 대범하여져 갔다3

 

급기야는 거꾸로 신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가 되고

인간을 피조물로 삼아서 인간들을 심판을 하고,

인간들에게 복을 주고 벌을 주기도 하고,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서 겁을 주면서,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게 만들었다4

  1. 교황청이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반대한 것은 천동설이 옳아서가 아니라 지동설이 신비를 훼손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신비의 훼손이 바로 신의 훼손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신비는 모름으로부터 나오므로 무엇을 아는 것과 신을 아는 것은 동시에 존립할 수 없다. 그래서 금단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본문으로]
  3. 인간만이 관념의 유희를 즐긴다. 그러다가 관념의 노예로 전락하기도 한다. 실존을 표현하기 위한 관념이 거꾸로 실존 행세를 하는 것이다. 비근한 예가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이라는 말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경우이다. [본문으로]
  4. 신을 주인으로 받아들여도 굳이 나쁠 것은 없다. 다만, 그 신이라는 것이 바로 세상이며, 삶이라는 것을 알아라. 삶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신의 사랑이란 어불성설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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