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자전거여행

남해안여행/5월 01일 해남유스호스텔

박희욱 2012. 5. 10. 06:28

어제 대흥사를 구경하고 유스호스텔로 돌아오니 오전 11시 40분 밖에 되지 않았다.

새벽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뒤덮고 있고, 간간이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제 오후부터 개겼는데 아무래도 오늘도 여기서 내일 아침까지 개겨야 할 것 같지만 답답할 것은 전혀 없다.

여기서라면 1주일을 개기라고 해도 느긋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숙박비가 단돈 15,000원이니까.

 

 

자전거여행의 최대의 적은 비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하루종일 가랑비를 뿌리고 있다.

 

 

 

 

7,000원이 아까워서 케이블카를 타보지 않았다.

더구나 월출산에서 조망을 실컷 감상하였고,

구름이 가득한 곳에서 조망이 좋을 리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케이블카전망대가 구름 위에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그러나 이 날씨에도 케이블카가 간혹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 가랑비는 신록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는 꿀맛이리라.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아온지라 이런 낙숫물 떨어지는 것을 본지도 오래다.

 

 

 

 

내가 자랄 때는 비오는 날이면 아무것도 할일이 없었다.

집안에는 TV는 말할 것도 없고, 라디오도, 읽을 동화책도, 장난감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라디오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우리집에 들어온 유일의 문화기기 금성 트렌지스터 라이디오가 몇달 후 어느날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빚에 쪼들린 아버님이 팔아버린 것이었다.)

 

이럴 때는 자연히 군것질이 생각난다. 그러나

군것질 할 것도 거의 없다. 기껏해야 쌀을 볶아 먹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할머니 눈치를 살펴야 하는 어머니로서는 끝내 해주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히 지붕 처마끝에서 낙숫물이 떨어져서 연출하는 물방울이 튀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런데 그 낙숫물 떨어지는 모습이 그리울 때가 있었고,

오늘 그때와 비슷한 것을 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그 시절을 어찌 상상이나 하겠는가.

우리 아들이 대학1학년 때 유럽배낭여행을 가라고 권하자 냉큼 가지 않고 내년에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내가 니 같으면 날겠다, 임마!"

 

아내에게, 정말이지 나야말로 부잣집에 태어났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아쉬워 할 것은 없다. 날아봤자 높이 난 것만큼 바닥에 추락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이를테면 한량으로 굴러다니다가 지금쯤은 급식소를 기웃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재로 내가 쬐금 공부한 것도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함이었다.

 

서울법대 인문계열 톱으로 들어가서 지금은 변호사를 하고 있는 장승수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공부를 안했다면 도대체 무얼 해먹고 살았을까 자신이 없다.

 

아무튼 지나 간 일은 아무 소용 없는 것!

 

 

여기서 3박을 하는 동안에 개인 투숙객은 내가 유일하였고,

첫날은 울산에서 왔다는 할매급 아주머니 5명이 한 방을 사용하였고,

둘째날은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여행객 한 팀이 있었을 뿐이다.

 

대부분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객이 손님이고,

7~8월이 아니면 개인 개인 투숙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유스호스텔 이용이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나 보다.

 

 

 

 

2층 복도에는 3일 동안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2층을 내가 전세낸 것이다.

 

 

 

 

위스키, 홍주, e북, MP3, 커피 등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LCD TV도 있지만 내게는 아무 필요가 없다.

없는 것이라고는 불필요한 마누라 밖에 없다(마누라가 이 글은 안봐야 할텐데).

 

위스키는 캪틴Q이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나는 죠니워커 블랙 1,000ml(40,400원)와 함께

위스키값을 좀 아껴볼까 해서 내버릴 요량으로 하고 캪틴Q 700ml짜리를 5,800원에 사왔다.

위스키 맛을 잘 모르는 아내는 캪틴Q를 맛보더니

"앞으로는 이런 거 사서 마시지 마세요. 최소한 죠니워커 블랙 정도는 마시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 아내가 제일 사랑스럽고, 마음 든든해진다(이 글은 아내가 봐줘으면 좋겠는데).

 

역시 캪틴Q의 맛은 양주보다 질이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내버릴 수준은 아니어서 가져온 것이다.

두 위스키는 가격으로 따지면 근 7배의 가격이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충분히 마실만 했다.

 

세상은 얼마나 평등한가!

없는 놈은 캪틴Q 마시고, 있는 놈은 그 루이 몇 살인가 하는 것을 마시고.

 

결코 미식가가 아닌 나로서는 위스키는 12년 산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상당히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17년산,

그 이상 21년산이면 선물용,

30년산 이상이면 뇌물용이다.

 

나는 잔에 위스키를 따를 때는 한 번에 반잔 이상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혓바닥에 적시 듯하는 것이 고작이다.

 

 

 

 

궁전에 투숙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편안할까!

야영장으로, 유스호스텔로, 기껏해야 모텔로 전전하다가 도리가 없어서 호텔이라도 투숙하게 되면,

호텔은 지불한 숙박비만큼 피로가 풀린다는 말이 실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끝내 숙박비 걱정은 남는다.

그러나 여기는 노우!

세계의 모든 유스호스텔의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 따로 있지만 여기만은 실내에 있다.

중국에서는 예외적으로 실내에 있는 곳이 있었다.

 

 

 

 

나의 전용부엌이다.

뿐인가? 세탁실도 나의 전용이었다.

 

 

 

 

멀치칼국수에 햇반

반찬은 고추장. 김치, 한성 창란젖갈이 전부.

그리고 원두커피.

햇반 하나 정도는 고추장만 있어서도 거뜬하다.

김치하고 먹으면 꿀맛.

창란젖이 나오면 곤란할 지경이다. 햇반 3개라도 모자라니까!

허풍떨지 말라고?

만일 당신이 언제나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아왔다면 나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내가 저렇게 작은 코펠에 처음올 밥짓는 것을 시도한 것이 그리스 에게해 크레타섬의 방파제 아래에서 이다.

그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리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여기서 밥을 해먹고 맥주 두 병을 비우고 나니 슬금슬금 웃음이 나오는 것이

특급호텔 부페식을 먹은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비교하는 것조차도 우습다.

 

 

 

 

햇반을 처음 개발한 사람이 존경스럽다.

그에게 훈장을 주자!

 

만일 개미라도 찾아와서 달달 긁어먹어버린 햇반 그릇은 보았다면 나를 두고 발가락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