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출발하면서(On my leaving for Northern Europe)

박희욱 2013. 4. 30. 02:18

 

 

 

 

또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북유럽은 이미 재작년에 결정되어 있었다.

그간 유럽을 3번 여행했었지만 북유럽은 아내와의 여행을 위하여 남겨 놓았었다.

그래서 지난해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북유럽을 여행하려고 하였으나 내년으로 미루자는 아내의 뜻에 따라서 실행하지 못하고,

북유럽여행 대신에 나 혼자서 알래스카로 방향을 돌렸었다.

그렇게 미루었던 여행을 올해 결행하고자 하였으나 아내는 나와의 힘든 여행을 마음 내키지 않아 하여서 결국 혼자서 이 여행을 시도하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재미있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행이 얼마나 힘든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 아들 놈은 어릴 때 이미 그것을 알아버렸다. 그녀석이 초등학교 때, 나는 가족을 데리고 유럽 1개월과 미국 2개월 렌트카를 이용한 캠핑여행을 하였다. 아들이 중학생 때 제 할아버지의 미국유학 권유에 집떠나면 고생이라면서 부산을 떠나지  않으려 한 것이 그때 힘들었던 경험을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녀석이 그런 말을 하다니, 늙어버린 어린아이였는가 보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등을 구경시켜 주면서 장래에 네가 다닐 대학교라고 말했었는데 그것이 역효과를 유발하고 말았는 것 같다. 만일 유학을 갔었더라면 본인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뒷바라지하는 우리 가족도 고생을 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그 녀석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북유럽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입한 것이 이미 지난 1월의 중순 때였는데, 언제나 그러하듯이 항공권을 구입할 때는 저지른다는 심정이다. 그만큼 오랜기간의 여행은 고달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심정은 마치 mtb로 난코스를 뛰어내리는 기분과 비슷하다. 흥미있고, 스릴이 있으면서도 위험성 때문에 주저되기도 하는 그런 기분 말이다. 물론 나는 여행에서 위험을 느끼지는 않지만, 고달프고 힘든 것이  걱정이 되고 두렵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3개월간 자전거를 가지고서 혼자서 이 캠핑장 저 캠핑장, 취사를 하면서 이사다니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래도 결단을 내렸다. 이번의 결단은 마크트웨인의 말이 힘이 되었다.

-당신은 20년 후에는 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하지 않았던 것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고생스런 여행을 떠날 때마다 왜 여행을 떠나는지 자문을 해보지만 뾰쪽한 자답은 할 수 없다.

그런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라인홀트 매스너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낭가 파르바트를 혼자서 오르려고 했을 때 그 계획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어온 신문기자가 있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답이 궁했던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를 떴다.'

그는 8천미터급 14좌를 세계최초로 등정한 사람이다. 그 뿐이랴!

1953년에 에베레스트 산을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에게 기자가 왜 등산을 하느냐고 묻자 산이 있어서 산을 오른다고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말은 목적이 없다는 말이다.

흔히들 여행이 견문을 넓힌다고  하지만 요즘과 같은 정보화시대는 여행을 통하여 견문을 넓히는 것은 별로 효율적인 방법도 아니려니와 나에게는 이미 견문도 필요 없다.

이제와서 견문을 넓힌다는 말도 나에게는 상투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때때로 삶을 사는 여러가지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사실상은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런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그냥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다.

알고 보면 모든 목적 있는 것은 하찮은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지난해 연말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은 언제나 차후로 미룬다. 시간과 돈이 없다는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행은 아무런 이유와 목적이 없으면서도 많은 시간과 돈을 소모시키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진짜 여행은 그토록 고단하고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일상을 떠나고 싶어하는 심정에서일 것이다. 여행을 가는 목적지만큼이나 여기를 떠나는 것, 그것도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훌쩍 떠나지 못하는 것은 벗어나고 싶은 그 일상이 혹시라도 여행으로 인한 부재시에 훼손되거나 침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지 아닐까 한다. 옛날에는 나도 그러한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 불안감을 떨쳐버렸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유보하듯이 인생 자체도 이래저래 유보하다가

실제로는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종국을 맞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매스너가 자신은 아직도 8천미터 고봉에 오르는 동기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했듯이, 나도 이렇게 힘든 여행을 왜 하는지 무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꼭 이유가 없다라기 보다도 말이라는 것이 본원적으로 사물의 실체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실체를 지시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음성적 기호이며, 문자는 언어의 시각적 기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명가명 비상명이라고 하였고,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한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사람들은 언어에 의한 자신의 사유에 매달리면서 스스로를 구속하고 제한하며, 그럼으로써 사물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은연중에 대단히 신뢰하는 말이라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인식은 깨달음으로 가는 반드시 넘어가야 할 필수불가결한 대문이다.










 


그래도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꼭 하나만 말한다면 앞에서도 말한 것 처럼 일상을 떠나기 위한 것이다. 일상을 반복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사는 것이다. 오래전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한 적이 있다. 그 하나는 영상물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텔레비젼이든, 컴푸터 화면이든, 무엇이든 간에. 오늘날의 영화, 텔레비젼 등과 같은 영상기기와 컴퓨터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과 같은 문화기기가  우리를 실제의 행동에 의한 경험하는 세계로부터 시청을 통한 허상의 세계로 밀어넣기 때문이다. 나는 후자의 그런 삶은 삶의 낭비일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TV도 보지 않고, 인터넷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찾고, 카페와 블로그 작업을 위해서만 접한다. 쉽게 말하자면, 음식은 보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며, 스포츠는 중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며, 삶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엇이든 습관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은 좋지 못하고,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습관적으로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했었다. 사실 습관적으로 똑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사는 것은 죽은 시체가 움직이는 좀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 당부는 적절했다고 여겨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금언과 처세술을 말했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것에 얽매여서 결국은 우리의 삶을 옥죄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볼 일이다. 우리의 삶은 본래 자유스러운 것이다.

단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명피아니스트이자 지휘의 거장 바렌보임은 음악에 있어서 최고의 범죄는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삶에 있어서 최고의 범죄는 습관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여행을 떠나는 것도 습관적인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에서도 세상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발견하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매스너의 말을 하나 더 덧붙인다.

'새로운 경험을 지속하지 않는 사람은 흐르지 못하고 고여서 썩어가는 물과 같다.

또, 자기가 경험하지 않고 남의 경험에 끌려가는 사람은 식물처럼 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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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예나 지금이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 삶이 온통 고생스러운 여행이었다. 실제로 여행 가서 즐거웠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버지를 찾아 할머니와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수소문하면서 다닌 기억은 쓰라리고 아프다.

끼니를 이을 수가 없어 동냥밥을 얻어벅고 한뎃잠을 잘 때의 막막함, 쓸쓸함, 낯섦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해 질 무렵은 특히나 견디기 힘들었다. 해가 다 떨어진 뒤 골목을 걷는데 된장국 냄새가 확 풍겨오고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들러면 서럽고 아팠다.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지만, 솔직히 내게는 두려움이 먼저다.

 

내가 세계여행을 한 것은 타이완과 베이징 딱 두 곳이다.

타이완에서는 돈 한 푼 없이 귀국행 비행기를 놓쳐서 속을 태웠고,

베이징에서는 천안문도 만리장성도 구경 못했다.

그러면서도 손님 접대하느라고 하루 네끼를 먹기도 했는데,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는 내게는 역시 개고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