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베를린2(Berlin)

박희욱 2013. 8. 7. 11:36

 

 

독일제국의회 의사당과 그 광장

 

 

 

 

 

 

 

 

 

 

 

 

 

 

 

 

 

 

 

 

 러시아여인은 모두 미인인 줄 알았는데... ㅋ

 

 

 

 

 

여기 있는 사람 모두 관광객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반대편 안쪽의 브란덴부르크 문

 

 

이 개선문은 프로이센 왕국에 의하여 1788~1791년에 세워졌다.

 

 

 

 

 

문 위의 사두마차는 1806년에 나폴레옹이 쳐들어와서 빼앗아 갔다가 1814년에 귀환하였다.

 

 

 

 

 

달려오는 마라토너들

 

 

 

 

 

 

나는 마라톤, 철인3종경기 등 극기훈련인 듯한 스포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 것이 나쁘다기보다는 더 좋고 아름다운 일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라토너는 마라톤은 하나의 行禪이라고 했다.

그만큼 뛰는 동안에는 몰입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사상이라는 것이 항상 그러하듯이, 평등사상도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 도구를 잘 이용한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그 도구에 이용당한 사람도 있지만

인민들은 둘 중에서 이용당한 사람들이다.

 

 

 

운터 덴 린덴에서 박물관섬으로

 

 

운터 덴 린덴(보리수나무 아래)

 

 

 

 

 

박물관섬의 베를린 대성당

 

 

 

이집트박물관

 

 

좌측의 이집트박물관과 우측의 대성당

 

 

 

 

 

이집트박물관은 입장하지 않았다.

 

 

 

 

 

 

 

 

 

 

 

 

 

 

 

 

이집트 박물관의 보물 네페르티티 흉상

 

기원전 14세기 고대 이집트 파라오 아케나톤(아멘호텝 4세)의 부인인 네페르티티 왕비의 석회암 채색 흉상으로

1912년 12월 6일 나일강변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발굴됐다.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가장 높은 유물 중 하나로 평가돼 이집트 정부가 1923년부터 반환을 요구했지만

독일은 합법적으로 취득했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은 현대 이집트의 것이 아니라 전인류의 것이다.

게다가 자기것이라 해도 간수를 하지 못한 이집트의 책임이라고 본다.

흔히들 약탈이라고 하는데 나의 관점은 선진제국들이 유물을 발굴하여 보관을 하게 된 것은 잘할 일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뒤늦게 유물을 전시보관하는 것도 유럽인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집트 박물관은 그냥 통과. 카이로의 박물관을 비롯하여 이집트의 유물은 수많은 박물관에서 신물이 나도록 구경하였다. 이집트 유물과의 첫 조우는 대영박물관에서였다. 그때의 감상은 고대 이집트가 바로 나의 곁에 다가온 느낌이 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생활은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와 현대! 삶의 방식에서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희노애락은 다름이 없고, 그 차이는 밥을 손가락으로 먹느냐 숟가락으로 먹느냐의 차이 뿐이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고대인들이 미개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이 현대인의 삶을 본다면 미친 인간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빠빠라기가 생각난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추장이 20세기 초의 런던을 방문한 다음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감상을 기록한 희귀한 책이다. 나의 학창시절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는 나는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서명이 마치 만화책 같아서였을 것이다. 세월이 한 참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읽어보았는데 현대문명을 보는 그 추장의 통찰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평생을 걸어서만 다녔을 추장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인간을 하늘을 날게 해주는 비행기를 런던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놀라운 유럽문명에 경도되지 않고 예리한 눈으로 정확하게 그 허구성을 짚어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발은 구두끈으로 졸라매고, 허리는 혁대로 조이고, 목은 넥타이로 졸라매고, 머리에는 높다란 모자를 눌러 쓰고, 온 몸을 코트로 감싸고, 장갑을 낀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빠빠라기의 모습이 그의 눈에는 미친놈으로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현대의 빠빠라기와 남태평양의 옛 애버리진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빠빠라기들은 20년 정도 학교를 다녀야 사람 대접을 받는다.                                 애버리진은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흠될 게 없다

빠빠라기들은 자동차로 바삐 돌아다녀도 시간이 없다.                                         애버리진은 슬슬 걸어다녀도 시간 같은 것은 아예 모른다

빠빠라기들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TV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애버리진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뛰어놀면 된다

빠빠라기들은 인터넷으로 세상의 온갖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애버리진은 알 필요가 있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빠빠라기들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화상전화를 하면 된다.                                     애버리진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눈빛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빠빠라기들은 요트를 장만하면 흐뭇해 한다.                                                      애버리진 일상적으로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

빠빠라기들은 좋은 음식이 아니면 먹지를 못한다.                                               애버리진은 아무것이나 맛있게 먹는다

빠빠라기들은 다이어트를 걱정해야 하지만,                                                       애버리진은 다이어트가 뭔지도 모른다

빠빠라기들은 오래 살 수 있지만 직선적 시간이 그들의 생명을 결국은 끝장낸다.      애버리진은 오래 살지 못해도 순환적 시간이 그들을 윤회시킨다

빠빠리기들은 삶을 사는 시간보다 삶을 위한 준비시간이 대부분이다.                     애버리진은 살기 위한 별도의 준비가 불필요하다

빠빠라기들은 삶을 낭비하면서 노후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애버리진은 삶을 통채로 산 다음에 그냥 죽으면 된다

 

불쌍한 현대 빠빠라기들!

 

 

구국립미술관

 

 

 

 

 

 

 

 

 

 

 

 

 

 

 

 

 

 

 

 

 

 

 

 

 

 

 

 

 

 

 

 

정면은 페르가몬 박물관

오른쪽은 신국립미술관의 매표소

 

 

 

 

 

구국립미술관

나는 저 매표소에서 박물관 3일 이용권을 24유로에 구입하였다.

 

 

 

 

 

좌측은 국립미술관, 정면은 대성당, 우측은 신박물관과 이집트박물관

3일권을 끊어서 먼저 신박물관에 입장하려고 했는데 입구의 여직원이 자전거신발로써는 입장을 못한단다.

남자직원이 나와서 이 섬의 모든 박물관은 자전거신발은 입장불가란다.

신발바닥의 클릿이 바닥표면을 상하게 한다는 것일 게다.

 

나는 신발을 벗어들고서 입장을 하겠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미국동부의 어느 미술관에서도 거부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의 양말은 양말이 아니라 신발이라고 너스레를 떨어봐도 소용이 없다.

 

 

할 수 없이 내일 슬리퍼를 신고 와서 다시 입장하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바로 옆의 페르가몬 박물관 입장을 시도하기로 했는데 무사통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