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어느 개미의 삶과 죽음

박희욱 2013. 12. 20. 07:44

 

이 개미는 본래 건강하게 태어나서 자유롭게 정글의 숲속을 돌아다녔다

 

그런 개미가 어쩌다가 숲속에서 곰팡이 포자에게 감염되었다

 

그 곰팡이 포자는 먼저 개미의 뇌를 점령하고서 서서히 개미의 몸체에 퍼져서 파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미가 죽지는 않도록 개미의  내부 장기만은 살려 두었다1

 

그러다가 곰팡이가 충분히 성장하자 개미로 하여금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온도의 나무가지 끝으로 끌고 올라갔다

 

 

마침내 그 장소에 이르자 곰팡이는 개미에게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려서

 

개미의 튼튼한 이빨로 나무가지를 꽉 깨물어 개미가 죽은 시체가 된 후에 비바람이 쳐도 나무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 곰팡이는 마침내 개미의 목숨을 끊은 다음에, 비로소

 

개미의 머리로부터  허연 몸체를  삐쭉이 내밀어서 자신의 정체를 바깥으로 드러내었다

 

그러고는 다시 죽은 개미의 시체 옆을 지나가는 또 다른 개미를 기다리는 것이었다2

 

 

 

 

 

 

 

 

 

 

 

 

 

 

 

 

  1. 이런 개미는 분명히 자신의 뜻대로 산다고 여기는데도불구하고 엄청나게 구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본문으로]
  2. 그 곰팡이가 바로 사회가 그대에게 주입한 온갖 개념이나, 관념이나, 이념을 비롯한 모든 사념들이다. 무심,무념, 즉 침묵으로 들어가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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