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3번 정도는 자전거를 타고 솔향이를 보러 광안리 삼정그린코아 아파트 놀이터에 간다.
솔향이가 어린이집을 파하는 오후 4시 쯤에 놀이터에 도착하면,
여러 아이들이 나와서 뛰노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이 순간은 내게는 참으로 평온한 기분좋은 시간이다.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에 놀이터 그늘 밑 벤치에 앉아서 광안리해변에서 불어오는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솔향, 성우, 시우, 제원, 보연, 다인, 소정, 소연, 예찬, 기백, 예준, 경화, 가민, 아연 등등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은 나를 미소를 짓게 한다.
그 중에서 울 솔향이가 제일 이뿌다(손녀바보라고 욕을 퍼부어도 얼마든지 받아마실 자신이 있슴. ㅋ)
이 놀이터에는 보조 아주머니와 함께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분이 있다.
첫째는 7살 쯤으로 보이는 지체장애아이고, 둘째는 4살, 셋째는 이제 16개월 짜리이다.
놀이터를 빙빙 돌며 산책하는 장애아가족
솔향이와 승우, 그리고 장애아가족
나는 그 아주머니에 대해서 2가지를 놀라워 했다.
첫째는 요즘 같이 하나도 낳기를 어려워 하는 시대에 장애아 다음에 셋이나 낳은 것이고,
둘째는 첫째가 장애아인데도 불구하고 그 아주머니의 모습에 전혀 어두운 그늘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도 더 밝은 것 같다.
나는 둘째 아이가 대단한 패악을 부리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는데 성마른 나는 4살 밖에 되지 않는 그놈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한번은 그 녀석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악을 쓰면서 엄마더러 자기한테 오라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하도 답답해서 그 엄마한테 왜 저모양이냐는 투로 물었더니 그런 둘째를 이해한다는 거였다.
그 엄마는 말은 안했지만, 아마도 첫째와 셋째에만 쏠린 엄마의 관심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 것 같았다.
그런데 셋째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같이 언제나 웃는 모습을 보이는데, 아마도 성품이 매우 좋은 아이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무척 놀라운 사실을 새로이 전해들었다.
그 첫째 지체장애아는 임신중에 장애진단을 받았슴에도 불구하고 출산했다는 것이다.
그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육체적 생명의 귀중함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나는 삶다운 삶 자체가 생명인 것으로 보며 삶을 이어갈 가치가 없는 육체적 생명은 생명으로 보지 않는다.
말하자면 맹목적인 생명중시 사상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하나의 도그마이다.
당연히 나는 안락사에 대해서는 적극적 찬성이다.
그런 나는 요즘 TV에 나오는 안성기의 유니세프 광고를 보면 즉시 채널을 돌려버린다.
시청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비참한 모습을 끝없이 반복해서 자꾸 보여주는 것이 무척 괴씸할 따름이다.
과연 몇 푼의 기부금이 그런 비참한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도움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그런 상황을 반복시키고 지속시키는 결과만 가져다 줄 것인가?
지금 지구는 인구과잉으로 인해서 지구가 지구괘도에서 가라않을 지경이다.
지구온난화는 말할 것도 없고, 바다가 오염되고 숲과 평원이 농지로 바뀌면서 수많은 생물들이 서식지를 잃고서 멸종해 가는 중이다.
예날에는 뒷산에서 담배 피던 호랑이도 이제 지구상에 남은 것은 3천 마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자도 2만 마리 정도 남았는데 그 중 숫사자는 3천마리가 남았다 한다.
그래도 무조건 인간의 생명만이 귀중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생명이 귀중하지 않다는 것인가?
그렇다! 귀중할 것 없다.
그러면 당신한테 귀중한 것은 무엇인가?
뜬 구름같은 이 세상에서 귀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10년전에 미국 몬타나주의 어느 맥도날드점에서 보았던 어떤 가족이 생각난다.
그 가족은 거의 연연생인 듯한 7명의 딸이 있었고, 막둥이는 아들이었는데,
그 막둥이는 막둥이가 아니었다, 그 엄마의 뱃속에는 또 한 놈이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그 부부가 존경스러웠다. 왜?
삶이 불안하면, 삶을 신뢰하지 못하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부부의 삶에 대한 신뢰가 존경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 불과한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가장의 표정에서 약간의 긴장을 보는 듯했다,
10명의 가족이 먹는 맥도날드 햄버거 갯수를 생각해보라.
아직 초등생을 벗어나지 못해 보이는 큰딸의 표정도 그렇게 밝게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우리집 넷째가 태어날 때 불만이 많았는데, 그 이후 둘이 더 태어났다. 나는 5남1녀의 장남)
이 아주머니 또한 지체장애아를 출산하기로 결심할 때는 삶에 대한 깊은 신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하고 할 수 밖에 없다.
신앙의 힘이라고? 신앙의 힘이라는 것도 결국은 삶에 대한 신뢰다.
알고보면 삶이 곧 신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이 곧 신뢰이기도 하다.
신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상호적인 신뢰가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1996년도에 인도여행에서 돌아와서 아내에게 셋째를 낳자고 졸라댔던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대꾸도 없이 나의 요청을 묵살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는 잘 한 것이다.
막둥이가 하나 생겼더라면 나는 아직도 직업전선에서 총대를 매고 있을 것이고,
그만큼 나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아주머니는 3형제를 키우는데 힘들고 고달픈 일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 대한 신뢰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리라 믿는다.
그것은 무소의 뿔같은 굳센 힘이 아니라 세찬 바람조차 걸러보내는 거물망같은 삶에 대한 복종으로써!
지금의 그녀의 표정이 그것을 보증한다.
그 가족에게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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