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부동심 1

박희욱 2016. 9. 12. 11:16

이번 리우올림픽의 몇가지 게임의 결승전을 보면서 새삼스러이 승부에 임해서는 부동심이 매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펜싱, 사격, 양궁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테니스, 골프, 격투기 등도 부동심이 승패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로 보인다.

올림픽에서 결승전에 오른 선수라면 기량면에서는 서로 우열을 가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욱이나 부동심이 중요한 것이리라.

골프를 하는 사람들이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 하는 것도 그러한 부동심을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바둑에서도 그러한 스포츠 이상으로 부동심이 승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부동심이 약한 승부사는 승부처에서는 마음이 흔들리기 쉽다.

이세돌 9단 같은 경우는 특히나 부동심이 강한 것 같다.

그는 초반전 포석에서 판세가 불리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깊은 수읽기로 적진을 깊숙히 찔러 들어간다.

그러면 상대방은 위축이되고 마음이 흔들려서 자신의 장기인 수읽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프로기사들은 유리한 바둑을 끝까지 지켜내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승리가 눈앞에 다가오면 얼른 승리를 결정짓겠다고 마음이 조금해져서 착수를 서두르고, 그러다 보면 쉬운 수를 두다가 조금씩 양보하게 된다.

그리하여 판세가 근접하게 되면 마음이 흔들려서 쉬운 수도 눈에 보이지 않고 결국은 실착을 범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유리했던 판을 잃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판세가 불리한 기사는 그 시점에서는 이겨야겠다는 욕망에서 벗어난다.

그리하여 패배를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착수 또한 서두러지 않고, 양보도 하지도 않고,

야금야금 찔러들어가면서 상대방을 괴롭히면, 곧 끝나리라고 여기던 상대방은 당황하고, 결과적으로 역전이 일어난다.

이러한 경우 아마추어들은 다 이겼던 판을 저버렸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도 결국은 능력이다.

어느때부터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접어버리고 있는데, 아무튼 바둑에서는 부동심이 매우 중요하다.


바둑판을 앞에 두었을 때 부동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프로기사들은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려고 여러가지 수단을 강구한다.

프로기사들은 상대방 마음을 흔들기 위하여 상대방 의도를 파악하고 가능한 한 상대방의 의도에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프로기사의 착수는 수읽기를 하되 언제나 반발해야겠다는 기본정신이 투철하다.

그래서 바둑의 전술중에는 흔들기라는 것이 의젓이 들어있다.


또 다른 상대방 부동심을 흔드는 수단은 의도적으로 상대방 신경을 거스러는 것이다.

예전에는 비신사적 방법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게 규정을 많이 만든데다가 결정적인 것은

TV 바둑중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시청자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런 방법으로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착수 시간을 끄는 것이다.


일본의 조치훈 9단은 장고파로 유명하다. 그러면 그의 속기는 어떠한가?

그의 속기 또한 매우 강하다.

이런 일화가 있다.


일본의 명인전에서 조치훈 9단과 류시훈 9단이 결승전에서 붙었다.

그런데 조치훈 9단이, 류시훈 9단이 보기에 뻔한 수를 놓고서 1시간 37분의 장고를 하더란다.

이렇게 되면 부처가 아니고서는 짜증이 난다. 생각해보라, 바둑판에서 한 수도 놓지 않고 1시간 37분 동안 상대방의 착수를 기다린다고 생각해보라.

조치훈 9단의 의도를 간파한 류 9단은 화가나서 자기도 장고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해도 1시간은 넘지 못했다고 한다.

조치훈 9단은 그렇게 물쓰듯이 시간을 사용하면 종반에 들어서면 언제나 초읽기에 몰린다. 

그런데 그렇게 초읽기에 몰려도 거의 실수를 하지 않고 바둑돌은 놓으니 상대편은 더욱 기분이 잡쳐지기 마련이다.

류 9단은 장고시합에 진 것이다. 그는 쓸데없이 1시간을 낭비한데다가 짜증은 짜증대로 났으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 판을 내주고 말았다 한다. 목숨을 걸고 장고를 하는 조치훈 9단에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프로기사들은 바둑판에 앉으면 최선의 수를 찾기 위해서 골몰하였는데 최근에는 그런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 한다.

즉, 최선의 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기풍을 파악하고, 상대방이 기피하고 싫어하는 수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기분을 좋지 않게 해서 부동심을 흔들자는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말만 스포츠 정신을 말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스포츠 정신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럽의 축구중계를 보면 필요할 경우에는 비신사적 파울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선수들은 교묘한 파울을 하는 수법을 연구하고 연습할 것임에 틀림없다.

레슬링 국가대표선수였던 어느 체육교수의 말로는 스포츠인들의 성품은 별로 좋지 못하다고 했다.

그들은 상대방 약점을 찾아서 공격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다고 실토했다.


얼마전에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알파고가 인간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

그것은 알파고에게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무심이란 말이다. 그러니 부동심이다.

무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는 그 부동심을 좌우명으로 삼고 싶다.


사실, 스포츠에서의 부동심은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을 말하는 것일게다.

그러나 그 부동심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동심을 평상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런 평상심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이만큼 살다보니 다른 덕목은 필요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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