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심은 스포츠와 바둑에서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서도 무척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삶은 승부를 겨루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겨루는 것처럼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승패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등을 놓고 서로 다투는 것이 대체적인 우리의 삶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나는 그런 것을 성취하는데 부동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삶 자체에 있어서 부동심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동심이란 무엇일까?
스포츠에서의 부동심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평상심을 말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부동심이란 순간에 집중하면서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고요함을 말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부동심을 너무 확장해서 말하는지는 몰라도, 어쩌면 깨달음도 이와 같은 절대적인 부동심을 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수많은 덕목이 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배우자로서, 직장인으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등 그 사람의 위치에 따른 다양한 덕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덕목으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덕목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일 것이다.
그것은 절제, 침묵, 질서,결단, 진실,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교육부 덕목이란 것도 있다.
정직, 절제, 자율, 책임과 성실, 배려와 소통, 예의, 정의, 시민성, 인류애, 지식과 지혜 등인데, 개중에는 좀 아리송한 것도 있다.
오늘날 교욱현장에서의 인성이 얼마만큼이나 추락해서 이런 것을 교육부에서 선정했는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대단히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수많은 덕목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 관용, 자비, 신용, 용기, 친절, 이타심, 등도 덕목에 끼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랑도 덕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여러가지 덕목을 중요시 하면서 성장해 왔지만 세상을 제법 많이 살고 보니
이제는 그러한 덕목이 내 마음에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것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것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관념이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그런 덕목을 마음에 새겨셔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고래로부터 교육이 시작된 이후 여러가지 덕목에 대한 교육은 끊임 없이 계속되어져 왔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런 덕목이나 윤리도덕이 교육에 의하여 더욱 함양되었을까?
나는 어디에서도 그런 증거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파벌을 만들어서 서로 싸우는데 유교적 윤리도덕을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와 같이 사람들은 윤리도덕으로 인하여 사이가 더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윤리도덕은 교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본성이나, 살아가는 여러가지 경험에 의하여 스스로 습득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어떤 면에서 상당히 이기적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람은 이기적이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의외로 이기적이 되어라고 말하는 영적 스승들도 여럿을 보았다.
그런 이기적인 나로서는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덕목이 가슴에 남아있지 않으므로
그 집중력과 평상심에 투철한 부동심을 나의 덕목으로 삼고 싶다.
어쩌면 수많은 덕목을 하나로 합친다면 그것은 부동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나에게는 선악도 필요없고, 단지 부동심이 중요하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집중하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다.
돈이 없어도 좋고, 명예가 없어도 좋고, 권력이 없어도 좋고, 누가 뭐래도 좋고,
심지어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
부동심 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혹자는 사랑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사전에는 사랑이란 말이 없다.
그 말은 텅빈 솜사탕과 같은 말로 들린다.
사랑하라는 말만큼 허황된 말이 또 있을까?
부동심! 나는 이것을 최상위에 놓고 싶다.
절대적인 부동심은 무념, 무심, 무아와 같은 말이기도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