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잘 가라, 대한민국아!

박희욱 2020. 4. 15. 06:56

대한민국이 폭싹 망해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한겨울이면 

추위에 떨면서 등교하느라 손가락과 귓볼이 동상에 걸리기도 했다.

난방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는 교실에서 학교가 파하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면서 곱은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야 했다.

집에 오면 불도 떼지 않은 냉방에 10W 전등을 껴안고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긴 밤을 보내기도 했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잘먹고 잘 살았다. 그래서 키가 훤출하고 얼굴이 허옇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귀공자 같이 생긴 아이들도 많다.

비록 힘은 없고 인내력도 없는 나약한 약골로 성장하고 말았지만.

그들은 우리 세대를 우습게 안다. 그럴만도 하다,

자기네들보다 키가 거의 10센티나 작은 왜소하고 찌그러진 모습이

존경은 커녕 쳐다볼 맛이라도 나겠는가.

틀딱이라는 말이 부족해서 틀딱충이라 하기도 하고,

꼰대라는 말도 부족해서 요즘은 라떼라고 비아냥댄다.

 

그런 그들을 우리가 걱정해 줄 필요가 어디 있으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모든 책임을 우리세대에게 돌린다. 아니다.

우리세대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해서 헬조선이라 하기도 한다.

잘 되면 자신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그들 조상의 판박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걱정해주는 우리세대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던질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세대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다.

 

대한민국이 망해도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내가 왜 이땅의 나라에 목을 매달겠는가.

비록 내 마음이 약간 서늘해질지는 몰라도 무시해버릴 것이다.

왜냐 하면 실직적으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쓰라리고 혹독한 어린시절을 맛보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내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고, 자전거를 타는 등등,

내 생활에 위축될 것이 전혀 없다.

비록 위축이 된다 할지라도 명상을 하는데는 도리어 도움이 될 것이다.

여행을 하고 싶으면, 반쪽 땅이라면 어디든지 텐트를 지고서 떠날 수 있고,

그것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호텔에서 자는 것보다 낫다. 

사람들은 사돈 남걱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면

진짜로 사돈을 걱정해주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심심풀이이고,

남 걱정하는 동안에 잠시 자신의 걱정을 잊어버리기 위한 것이다.

 

잘 가라, 대한민국아!

나는 진흙에서 피어오른 연닢이려니.

알고보면, 누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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