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홀로

박희욱 2023. 10. 18. 18:25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신을 가리키는 언어 '나'를 3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즉, 인격(personality)과 자아(self)와 참나(selflessness)이다. 

보통 '나'라고 하면 자아(self)를 가리키고, 자아가 외부로 표출된 것을 인격이라 하고,

그 인격의 껍질은 벗고, 자아를 거쳐서 자신의 깊디 깊은 곳으로 침잠한 상태를 '참나'라 일컷는다.

이 '참나'는 힌두교의 용어이고, 불교에서는 無我라 이르며,

기독교에서는 자아의 모든 껍질을 벗어버리고  '참나' 에 침잠한 상태를 천국이라 이른다.

그래서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다.

 

행복은 바람직한, 우호적인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

어쩌면 타인의 부러움을 살 때 느끼는 감정이다.

비록, 노벨상을 수상하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가 없고,

비록, 루빈슈타인처럼 피아노를 잘 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가 없고.

비록, 얼굴을 성형한 다음에,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타고 있어도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산속에서, 광야에서, 또는 사막에서 홀로 존재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자기만족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곁눈질하는 타인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행복을 위해서는 타인이 절대 불가결의 요소이다.

 

행복은 타인과 함께 함으로써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고독을 즐긴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나는 모르는 사실이다.

무아를 즐긴다, 참나를 즐긴다, 천국을 즐긴다와 같은 말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이 권력과 금력과 명예를 얻어서 자신의 인격(personality)을 고양시키려는 것은 

타인을 자신의 주변에 붙들어 매어서 행복해지려는 심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홀로가 됨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이다.

 

무아가 되고, 참나가 되고, 그리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타인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대성당의 첨탑에 올라가는 계단은 반드시 홀로만이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있고,

예수가 40일 동안 홀로 광야에서 헤맨 것도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노자도 모든 관계(relationship)을 끊어버리고 히말라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다고 세상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 세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홀로 존재할 수 있다.

참나에 침잠하는것이다.

'침묵으로 가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파도타기다.  (0) 2023.10.20
being!  (0) 2023.10.18
행복  (0) 2023.10.18
행복  (0) 2023.10.16
행복  (0) 202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