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달리는 자전거가 되어야 한다.
멈추면 안된다는 말이다, 앞으로 계속 내달려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조금 달리다가 멈춰버린다.
멈춰서 로보트처럼 산다. 이를테면
주저앉아서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재미보려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일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행복이라 이른다.
행복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다람쥐쳇바퀴처럼 산다.
그래서 G. 구르지예프는 인간은 로보트라고 한 것이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한곳에 정체되면 안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을 탐색하면서 끝없이 성장해 나가야 한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파도가 움직이지 않으면 파도가 아니다.
그렇드시 인생은 움직여야만 인생이며, 정체는 곧 죽음이다.
그런것은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다.
되도록이면, 큰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살아야 한다.
돌부처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정체된 삶은 동물의 삶과 같다.
동물은 프로그램되어 있는대로 똑 같은 삶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동물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 수평적으로 움직임으로서 아무런 진화가 없다.
인간은 동물과 신의 양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대개의 인간들은 동물과 신의 어느 중간단계에서 정체되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의 평균적인 정신연령이 14세라 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전거처럼 앞으로 달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로켓처럼 하늘 높이, 수직으로 상승할 수도 있어야 한다.
만일,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수평으로만 달리면 영혼이 없는 인간으로서 종말을 맞이한다.
그래서 오쇼 라즈니쉬는, 모든 인간이 다 영혼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신앙을 가지고 신에 매달린다고 해서 영혼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성찰하면서 깊이 깊이 들어가야만 영혼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다, 영혼이 될 수 있다.
끝없이 껍대기를 까들어가야 하는 양파처럼.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겁쟁이다.
자전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는 것은 항상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로 깊숙히 들어가는 것도 두려워서 외면하고,
항상 외부세계로 시선을 돌려서 두리번거린다..
그래서 단순히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로보트처럼,
쳇바퀴속의 다람쥐처럼 반복되는 삶에 안주하면서 만족한다. 그러나
진화된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로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면서 자신의 세상을 넓혀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숙과 성장이 인생이어야 한다.
알에서 께어나라, 께어나서 애벌레가 되어라.
애벌레에 만족하지 말고, 번데기가 되어 죽어라.
번데기에서 멈추지 말고,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서 하늘높이 날아올라라.
과거를 죽이지 아니하면 새생명을 얻을 수 없다.
인생은 출렁이는 파도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