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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비판

박희욱 2024. 8. 13. 12:34

경제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내가 왜 칼 마르크스를 비판하려고 드는가. 내가 보기에 그의 사상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사상이라 것 자체가 본원적으로 상상에 다름없는 것이기는 하나 마르크스의 사상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못해 심각하다.

자본론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착취와 계급투쟁이다.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독점함으로써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기업이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자본을 투자하고 노동력을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를 말한다. 자본주의의 생산방법은 자본의 소유자(자본가)가 자본을 투자하여 생산에 필요한 원료·기계 등의 여러 가지 수단을 획득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며, 공장·직장 등에서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시켜 이 물품들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에 의해 이윤을 획득한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가는 마치 자선사업가가 되어야만 하는것으로  본다. 그래서 기업의 잉여가치를 노동자와 균등하게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그것이 착취라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에 의하면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와 인간답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임금은 상품과 마찬가지로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될 뿐이다. 마르크스는 마치 자본가가 무의도식하면서 기업의 이윤만 가로채는 불한당으로 묘사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본가 또한 다른 자본가와 경쟁해야 하며, 어느 순간 경쟁에서 밀려나서 도태될지 모르므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사람이다. 아무튼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계비를 챙겨주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그것은 노동자 스스로 책임져야 할 시항이다.

18세기 말에는 영국에서 잉클로저 운동이 일어나서 농토를 잃어버린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실업자가 된 농민 노동자들은 굶어죽을 판이었는데 그나마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죽하면 처자식을 공장에 내보내겠는가. 이것을 자본가가 아동까지도 착취했다고 누명을 씌우지만 자본가 입장에서는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다. 굳이 말하자면 노동자들의 부모가 자식을 착취한 것이다. 결국 착취란 없으며, 단지  마르크스가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세상에 기업에 제발로 들어가서 착취당함을 자임하는 바보가 어디 있다는 것인가. 무능력자 마르크스가 자본가를 질투해서  모함한 말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역사가 투쟁의 역사라 할지라도 그것은 계급투쟁아 아니라 권력투쟁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자본가가 계급이었나? 노동자가 계급이었나?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자본이 축적되어서 형성된 계층이 자본가 계층이다. 능력이 부족한 계층이 자동적으로 노동자 계층이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분리시킴으로서 적대감을 선동하기 위해서 계급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 당시에 신분제도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신분에 따라서 두 계층이 나눠어진 것은 아니다. 

노동가치설이라는 것도 그렇다. 간단히 말하면 상품의 가치는 제품에 투여된 노동력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가로채는가 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쉽게 말하면, 경제발전은 정주영 화장이나, 이병철 회장이가 한 일은 없고 노동자가 일구어낸 것이라는 말이다. 빌게이츠나 워렌버핏 같은 자본가들은 손도 까딱하지 않고 잉여가치를 챙겨먹은 도둑놈 취급을 한다. 사실은 생산의 주체도 자본이고 그 힘도 자본이다. 자본은 경제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다. 자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없고, 반대로 자본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깟 노동력은 자본앞에 스스로 몰려와서 줄을 선다. 우습지 않은가? 좀 지나친 말이기는 하나 노동력은 삽질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신봉하는 유물론도 들여다 보자. 자본주의의 유물론적 정신이 근대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씨조선의 유교사상이 한반도를 거지꼴로 만든 것도 유물론적 역사관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소련과 중공을 망친 공산주의사상도 유물론적 역사관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알고보면, 세상은 유물론과 유심론으로써 양분할 수 없는 상호작용하는 관계다.(https://heeouks.tistory.com/11733891).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집필하는데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15년은 내가 아는 한, 자본론의 키워드-착취계급투쟁,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온갖 궁리를 한 세월이었다. 팩트를 서술하고자 했다면 그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말하자면, 픽션을 쓰다보니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나간 것이었다. 사람들은 역시 팩트보다는 픽션을 좋아하는가 보다. 대개는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연예프로, 등등을 좋아하지만,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 픽션이기 때문이다. 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한 고교동기조차도 '자본론'이라는 픽션에 빠져서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완역한 것을 보면 대단한 매력을 지닌 픽션인 모양이다. 자본론은  번역은 커녕 완독해내기도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 있다. 허구를 둘러서 둘러서 합리화를 시키자니 마르크스도 힘들었고,  읽어내는 사람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은 어려울 것 없다. 위의 3가지 키워드만 알면 된다.

자본가 계층, 즉 유산자, 부르주아지들은 근대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배가 불러진 부르주아지들은 비로소 모든 신분제도의 사슬에 저항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배고픈 프롤레타리아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들이 아무리 팔을 휘들러도 민주주의로 이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없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은 경제력이다. 이것이 바로 유물사관이다. 프랑스 대혁명도  바로 부르주아지들의 성장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부르주아지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했다. 

고급문화를 선도하는 것도 자본가, 즉 부르조아지다. 그들이 그런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그런 문화를 소비해주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부르주아지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메달은 과연 32개나 획득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들은 부르주아지들을 폭격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1위부터 10위까지 인구 14억의 중국을 제외하면 몽땅 자본주의 국가들이 차지 했다. 알고보면 중국과 러시아 역시 정치적 부르주아지들의 공헌이다. 오늘도 부르주아지는 놀부처럼 험담을 듣고 삿대질을 당하고 있다. 기득권이니 갑이니 하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낙인 찍히고서. 모든 프롤레타리아는 실패한 부루주아지일 뿐이다. 제발 유산자들을 존중할 줄 알아라. 인간의 본성 질투심은 자신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지 상대방을 비난하는데 사용하면 자신의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알고보면 무산자들은 유산자의 덕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공을 장담했다. 즉, 자본주의는 그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종식되고 계급이 없는 공산사회가 도래한다는 거였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헤겔에서 빌려온 것이 변증법이다. 즉, 정반합이라는 해괴한 이론이다. 正, 즉 자본주의는 反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에 의해서 마침내 合, 즉 계급이 없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되어 있다는, 참으로 어이없는 이론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발전은 변증법에 의한 것이라고 못을 박음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역사의 법칙, 즉 변증법을 사용해서 역사의 발전을 예측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마르크스의 역사발전의 예측은 터무니 없는 사실로 밝혀졌을 뿐이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내지는 공유화를 일컷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재산의 사유화가 부정되는 사회다.그래서 집단농장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내것일 때와 내것이 아닐 때 인간이 사물을 대해는 태도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이럴테면, 공중화장실의 화장지 사용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다. 공산주의는 망하자는 말과 다름없다. 마르크스가 이것을 몰랐다면 바보임에 틀림없다. 굳이 말하자면 영리한 바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

마르크스가 그렇게도 혐오하는 자본가, 즉 부르주아지가 없었다면, 노예제사회도, 봉건사회도, 전체주의 사회도 붕괴시킬 수 없었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도 없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세계는 idea(생각, 관념, 사상)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물리적인, 물질적인 활동과 실천으로만 변화된다는 마르크스이 말은 옳다. 세계는 사실상 경제력에 의해서 발전해 나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과는 반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동하였지만, 그 혁명이 성공한 예를 나는 모른다. 그의 〈공산당선언〉은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속박의 사슬밖에는 없다. 그들은 세계를 얻을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그는 이렇게 활동과 실천을 강조하는, 관념론을 배격하고, 자신은 유불론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재로는 대영박물관도서관에서 관념의 유희속에서 살았던 자다. 그가 진짜로 유물론자였다면 자본가가 되었을 것이다.

런던에서 열린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사상적 동지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인류역사 발전의 법칙'과 '자본주의 사회운동의 법칙'을 발견해냈다고 선언했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거시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을 빌려야겠다. 자본론은 경제적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자유를 박탈하는데 이용당했고, 사회적으로는 계층간의 적대감을 증폭시켜서 갈등을 조장하였다. 그는 결코 역사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인류문명상 최악의 인물이었다. 아마도 지옥에 가면 히틀러가 마르크스를 형님으로 모시지 않을까 싶다.

노동자의 낙원으로 만들려고 했던 모든 시도는 예외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공동가난은 있어도 공동부는 없다. 차라리 자본가의 낙원으로 만들어라. 내 장담한건데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공동부는 없을망정 공동가난은 없다. 자본가가 축적한 부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땅에 거의 그대로 남는다. 반면, 포퓰리즘은 똥으로 변하여 사라지고 만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풍성하게 주어봤자 낭비벽만 키우고 손벌리는 버릇만 들여서 자립의지를 꺽어버리고는 끝내 집안이 망하는 이치와 같다. 시대의 흐름에 둔감한 나로서는 감히 할말은 아니지만, 부동의 선진국으로  여겨졌던 서구의 복지제도가 휘청거리는 원인도 여기에 있지 싶다.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만고의 진리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 더 잘살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복지혜택으로 얹혀 살 가능성이 있다. 나는 돈버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돈을 좋아하지가 않아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고, 다만, 나는 돈보다는 자유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한민족에게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세계유일의 속담을 가지고 있다. 질투심, 이것이 대한민국의 경제기적을 일군 원동력이었다. 작금에 이르러 시대가 변하여 계층이동이 어렵게 되자 그 질투심을 자기발전에 이용하지 않고, 그보다는, 질투심의 본성대로 상대방을 헐뜯는데 사용한다.  

워렌 버핏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은, 탐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 질투심에 의해서 움직인다."

 

나에게 칼 마르크스는 '식은  무지의 일종'이라는 사실의 증거물로 추가되었다.

지식은 '세포분열이 멈춘 굳은살'에 불과하다.

지혜는 '지식 없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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