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erranean 5

지중해5개국67-그리스/크레타섬(Greece Crete)

박희욱 2009. 5. 20. 17:05

6월 17일

전날 오후 4시쯤 선박편으로 로도스섬을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일출전에 크레타섬의 이라클리온에

도착하였다. 여객선은 규모가 대단히 큰 것이었지만 잠을 잘 수 있도록 되어있지 않아서 무척 불편한

항해였다. 이후로는 가격은 훨씬 비싸도 항상 쾌속선을 이용했다.

 

크레타 섬은 지금은 크리티라 불리는데 동서의 길이가 240km나 되는 큰 섬이다.

크레타 문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문명의 전성기가 미노스왕 때이므로 이것을 미노아 문명이라 부른다.

미노아 문명은 일찌기 기원전 1900년경에 시작하였으므로 그리스 문명의 원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크레타를 경유하여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 멸망에는 2가지 설이 있는 것같다.

하나는 기원전 1450년에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인들의 침입에 의한 것이라는 설과,

크레타섬의 위쪽에 위치한 티라(산토리니)섬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다.

그 화산은 엄청난 규모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화산을 아틸란티스 대륙의 침몰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1450년경에는 그리스 본토에서 대규모 침공을 할 수 있는

큰 선박과 인원이 없었을 것이란 점에서 후자의 화산설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뭘 몰라서인지,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크레타섬에는 볼 것이 없어서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누가 물어온다면 크레타섬의 관광은 권유하지 않겠다.

학교시절 세계사 시간에 크레타 문명을 배우면서 크레타에 관한 환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로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말을 믿을 것은 못된다.

어떤 사람은 크레타를 이해하려면 석달도 모자란다고 하면서 볼거리가 많고, 그 풍요로움을 격찬을 했다.

그러나, 로도스섬의 아름다움을 보고난 나는 이라클리온에서

이 섬 최고의 관광지라 여겨지는 레팀논까지 달려보아도 그런 아름아움을 발견하지 못했고,

엄청 높은 산은 이 섬은 풍요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실, 어떤 관광지에 대한 평가는 그 관광객이 어떠한 심리적,

신체적 상태에서 그 관광지에 도착했는가 하는 것에 좌우된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했던 베니스조차도 아무 볼 것이 없었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크레타를 이해하려면 석달도 모자란다고 하였지만,

유명한 어느 여행가는 '나는 한 도시에 2~3일 이상은 머무르지 않는다.

더 이상 머무르면 그 도시를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말도 옳은 면이 있기도 하다.

 

역사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제넘을 짓인지는 몰라도,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울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별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전쟁에는 많은 영웅이 탄생한다.

그런 영웅들이 한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가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신화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고 한 말에 동감한다.

 

사실, 내가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배우고 안배우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배우면 역사의식이 생기고, 그 의식은 우리의 삶을 시간의 연장선상에 올려 놓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을 시간적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간의 줄타기를 하게되면, 줄의 좌우를 볼 수 없다.

좌우를 볼 수 없다는 말은 지금, 현재, 여기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삶은 지금, 현재, 여기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리고 더 덧붙이자면, 아킬레스, 알렉산드, 진시황, 징기스칸, 나폴레옹 등과 같은 자들이

역사에 없었더라면 인류역사에는 불필요한 전쟁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런 영웅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운 권력자들은 역사를 이용하여 백성들의 국가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다음에 전쟁터로 끌고간다. 그리하여 그 자신도 영웅이 되려한다.

 

아무튼, 여기서 만 3일을 머물렀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있다면 방파제에서 밥지어 먹은 것이다.

   

 

 

 이라클리온 항의 일출. 저멀리 수평선 위로 보이는 방파제까지 자전거로 가서 밥을 지어먹었다.

 

 

 

 이라클리온 항

 

 

 

 미로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크노소스 궁전

 

 

 

 신화에 나오는 그러한 미로는 없었을 것이다. 이 궁전의 역사가 3,500년이 넘었으니까 대단하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이것 하나를  보러온 관광객일 뿐인 나는 실망스러웠다.

 

 

 

 요니옴!

 

 

 

 

 

 

 

 

 

 

 

 

 

 

 

 

 

 

 

 

 

 

 

 왜그랬는지는 몰라도, 고추, 양파, 오이피클을 고추장에 찍어서 밥을 먹고 맥주 2병으로 목을 축이고 나니

 기분이 째졌다. 아마도 가난뱅이 자전거 여행자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그런 기쁨이리라.

 매일 저녁 여기서 밥을 지어먹었다.

 

 

 

 쌍딩이

 

 

 

 크레타섬의 3번째 도시 레팀논. 이라클리온에서 버스로 2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레팀논에서 유람선을 탔다.

 

 

 

 

 밥지어 먹는 것이 왠지 크다란 즐거움이었다.

 

 

 

 

 이라클리온에 있는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묘.

그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써놓도록 했다.

 < 나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않는다. 나는 자유>

 

 

 

 

 

그는 소설 '희랍인 조르바'로서 유명하다.

 

영화화하여 안소니 퀸이 주연을 맡아서 열연을 했다는데 나는 감상하지 못했다.

 

연극으로도 자주 공연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소설에 대단한 감동을 받는 것 같다.

 

특히, 라즈니쉬조차도 조르바-붓다의 인간형을 이상적 모델로서 칭송한다.

 

그래서 나도 이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별로 공감을 할 수 없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가 싶어서 다른 번역서를 읽어보아도 마찮가지였다. 

 

 

 

이 소설은 아무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말하자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는 인간의 전형으로서

 

조르바를 그린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태도로서 과연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데는 나는 회의적이다.

 

서양적 사고방식의 자유인인지는 몰라도, 결코 그런 식으로는 자유를 획득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질그릇 물레를 돌리다가 엄지손가락이 방해가 된다고 해서 그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것이 자유인가?

 

인간은 행위나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비록 황제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자유 또한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관념이다.

 

자유를 희구하는 마음조차도 포기 할 때,

 

그리하여 머리속에 자유라는 관념이 사라질 때,

 

그때 그대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지만,

 

정작 그 때는 그대는 자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철저히 중력의 법칙에 따라서 흐른다.

 

그렇다면, 물은 자유로운가, 아니면 구속되어 있는가.

 

물에게는 자유니 구속이니 하는 그런것은 없다.

 

 

 

 산토리니(티라)섬으로 가는 쾌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