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죽음과 수평선

박희욱 2010. 12. 26. 05:05

옛날 옛적에 두 친구가 뗏목에 돛을 달고 육지를  떠나서 바다로 나아갔다.

순풍에 돛을 맏기고 낚시질을 하면서 어리저리 항해하다가 어느듯 대양의 한 복판에 도달하였다.

그때까지 낚시질에 여념이 없었던 한 친구가 문득 사방을 둘러보고서 말했다.

 

"야! 저기를 봐! 수평선의 끝과 끝이 맞다아버렸어! 우리는 내일이면 죽을거야! 이제 우리는 죽었어! 우린 죽은 거야!"

다른 친구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수평선이란 없어!  걱정하지 마!"

한 친구가 말했다.

"아니야, 저기 수평선이 보이잖아, 바보야!

수평선을 넘어서면 틀림없이 엄청난 바다폭포가 있어서 우린 떨어져 죽을거야!"

다른 친구가 말했다.

"바보야! 수평선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수평선이란 실재하지 않아!

마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없는 것과 같은 거야."

한 친구는 말했다.

"아니야! 이거는 달라. 분명히 여기서 해수면을 따라가면 저 멀리 수평선이 실재로 있어.

우린 죽음을 벗어날 수 없어! 큰일 났어!"

 

다른 친구는 한 친구를 타일렀다.

"우린 지금여기에 있어! 수평선은 저기에 있어. 걱정할 필요없어!"

"우린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는다는 말이야?"

"어디로 갈 필요가 뭐있어? 항상 지금여기 이렇게 그냥 있으면 되잖아!"

"아니야! 나는 돌아가야 해! 나는 할일이 많은 사람이야!"

 

한 친구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서 낚시대를 놓고 울고 있었다.

이때 저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빛과 함께 신이 나타났다.

그리고 말씀이 있었다.

"친구여! 걱정하지 말라. 내가 구세주이다. 여기 내가 있는 수평선너머로 오면 죽음은 없다.

내가 수평선 아래에 있는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마!

나를 의심하지 말라! 나를 믿기만 하면 된다"

신은 힘주어 말했다.

 

구세주 신의 말을 들은 한 친구는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 되었다.

그는 당장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살았어! 나와 함께 저 구세주한테로 가자!"

 

다른 친구는 한 친구를 설득했다.

"친구야! 수평선은 없어!, 그래서 죽음은 없는 거야!

오직, 지금여기에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

너는 저 수평선에 닿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에 닿지 못한단 말이야!

신은 언제나 지금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어! 아무 걱정하지 마!"

 

한 친구가 말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지금여기 이 조그만 조각배가 무슨 신이란 말이냐?

나는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야, 너와는 달라!

나는 저 구세주 신을 믿어야만 해! 믿어야겠어! 믿어!

저기 봐! 물위의 수평선을 걷고 계시잖아!"

 

결국, 두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뗏목을 갈라서 바다위에서 헤어졌다.

한 친구는 반쪽짜리 뗏목을 타고서

끝없는 수평선을 향하여 끝없이 노를 저어 수평선으로 사라져 갔다.

 

그 이후의 그 친구의 소식은 모른다.

아마도 수평선에는 이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죽은 후에 천국에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도 죽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1.

 

다른 한 친구는

반쪽짜리 뗏목 위에서,

순풍에 돛을 맏기고,

지금도, 지금여기에서,

여전히 낚시질을 하고 있다.

  1. 그러므로 아무도 죽은 자가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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