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출발하면서

박희욱 2011. 10. 19. 18:26

  내가 그림을 사사했었던 안세홍 화백님의 부음을 며칠 전에 받았다. 향년 73세이시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대단한 드로잉 능력을 가지신 분이셨는데,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소묘와 그림의 구도 그리고, 수채화를 배웠다.

선생님과 함께 1주에 2번씩 꼬박 1년간  야외사생을 다녔던 소중한 경험을 함께 하셨던 분이다.

근래에 별로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스레 부음을 받고 보니 생전에 술을 한 잔 더 대접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선생님은 그 전에 두번이나 췌장염으로 입원하신 경험이 있으신지라 술을 매우 조심한다고 하였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셨다.

그림을 그리실 때마다 쇠주잔을 홀짝이면서 1~2병을 비우셔야만 했었다.

고인의 따님의 말씀에 따르면 돌아가시는 전날에도 쇠주를 20잔이나 들이키셨다고 한다.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대단원을 예감하시고 그토록 즐거움과 또, 그만한 고통을 주었던 쇠주와의 싸움을 끝내면서

삶과도 화해하는 마지막 술잔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삶의 마지막 종착역에 다다르면... 그냥 그렇게 여여할 뿐!

나의 곁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은 한 순간 다가왔다가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구름 같은 것!

나의 것이라고 여기는 몸과 마음 또한 일순간 일었다가 사라지는 한 줄기 바람 같은 것!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내일이면 나는 또 여행을 떠난다.

나의 여행은 주로 대자연과 눈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접촉하는 여행이었지만, 그 이면의 한 부분은 '버리고 떠나기'의 연습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할 운명이 아닌가!

그래서 나의 여행은 언제나 홀로였고, 앞으로도 홀로의 여행이 될 것이다. 

동행자를 구해볼까 하고 여러번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나는 홀로를 택하였고,

포터 대동조차도 나의 자유로움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포기하였다.

 

  여행의 계획은 대략 이렇다.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베시스하르(790m)에 가서 거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토롱라(5416m)를 넘어서 포카라(820m)까지 라이딩을 한다.

총연장 약 300km로서 12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여기에 키초탈호수(4600m)와 틸리초호수(4919m)의 사이드트레킹이 포함된다.

이것이 안나푸르나서킷 자전거라운딩이다.

 

  그런 다음에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자전거는 숙소에 맡기고, 배낭을 지고서 비행기로 루크라(2840m)에 가서 거기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한다. 꽁마라패스(5535m)를 넘어서 칼라파트라(5545m), EBC(5350m), 촐라라패스(5442m)를 넘고, 고쿄리(5340m)를 경유하여, 렌조라패스(5417m)를 넘어서 루크라로 되돌아 온다. 이것은 쿰부히말EBC/3-Pass 트레킹인데 17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는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4130m) 트레킹(ABC)을 하였는데, 나는 이것이 히말라야 트레킹의 하일라이트라고 여겼다.

그러나 귀국하고 보니 안나푸르나서킷이 더 아름다운 트레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안나서킷의 자전거 라운딩은 수년전에 자전거생활에 한국산악연맹 이사이신 유학재/박연우 부부가 후기를 올림으로써 알게 되었고,

나도 막연한 희망을 가져 보았으나 포기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지난해 ABC트레킹 때, 안나서킷을 자전거로 라운딩을 하고서 촘롱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온 뉴질랜드 젊은이 2명을 만나서(http://www.mountainpedalernz.blogspot.com/) , 그들로부터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되었고,

포카라에서 안나서킷자전거라운딩 지도를 입수함으로써 실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내일 10월 20일에 출발하여 11월 30일에 귀국할 예정이다. 한껏 욕심을 부린, 나의 능력을 넘어선 만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고, 또한 미련도 남지 않을  것이므로 감히 실행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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