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sk

프롤로그(Prologue)

박희욱 2012. 8. 13. 03:10

6월 15일 인천공항으로 출국하여 시애틀을 거쳐서 앵크리지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각으로 6월 16일이었고, 18일에 앵크리지를 출발하여 자전거여행을 시작하였다. 앵크리지에 돌아온 것은 8월 4일 저녁 8시였으며, Goldsmith 교수댁에서 3박을 한 후 8월 8일 새벽 1시 40분 비행기로, 역시 시애틀을 경유하여 인천공항으로 귀국하고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 것은 8월 10일 새벽 2시였다.

 

거의 모두 예정된 루트를 따라서 계획대로 여행을 끝마친 셈인데, 자전거 주행이 힘들고 어려웠던 곳은 거의 없었다. 단지, 글렌하이웨이를 타고서 와실라에 이를 때는 맞바람과 함께 기복이 심하여 자전거여행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면서 조기귀국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기도 하였던 적은 있었다. 와실라 시내의 모텔에 투숙하였을 때는 너무 피곤하여 이러다가는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또 한 번 힘들었던 곳은 톰슨 패스(Thomson Pass) 아래의 블루베리(Blueberry) 캠프그라운드에서 이번 여행의 최장거리 라이딩인 153km를 달려서 칫나(Chitina)에 이르렀을 때다. 이때도 긴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칫나에 가까워졌을 때 심한 기복과 힘께 불어오는 엄청난 맞바람 때문이었다. 또 한 번 엄청난 바람과 심한 기복이 있어서 라이딩에 애를 먹었던 곳이 있다. 델타졍크션과 필딩레이크 사이의 돈넬리크릭 캠핑장을 전후한 지역이다. 

 

이번 여행이 어렵고 힘들었던 것은 날씨와 캠핑장 사정이었다. 기온은 10도~20도 정도로 예상하였으나 예상보다는 2~3도 정도 더 낮아서 추위를 느낀 경우가 제법 많았다. 그러나 추위를 느낀 것은 기온 때문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흐린 날씨 때문이었다. 그것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월간 강수량이 60mm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흐리면 얼마나 흐릴까 하는 생각이 잘 못이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한 번도 없다시피 하였지만,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은 날도 거의 없었지 싶다. 주로 밤에 비가 많이 왔기는 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번 여름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알래스카도 이상 기후이기는 하나, 한국과는 반대로 저온현상 때문에 여름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또 하나 예상을 빗나간 것이 캠핑장 시설이었다. 선진국들의 캠핑장만 생각하고 샤워, 부엌, 급수, 전기  시설 등이 잘 되어 있으리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샤워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척 고생스러웠다. 수낭에 물을 받아서 가느다란 물줄기로 머리와 다리를 씻거나, 페이퍼 타올에 물을 적시고 환자용 스프레이 비누를 뿌려서 텐트내에서 몸을 닦아야 하는 날이 많았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아침, 저녁으로 춥고, 미리 알고 있었지만 심한 모기떼들의 공격, 그리고 자주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텐트 밖에서의 생활활동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텐트는 침실만이 아니라 부엌, 식당, 욕실, 휴계실 등의 역할을 함께 하였다. 좁은 텐트내의  생활이 무척 불편하였다. 그동안 항상 1인용 텐트를 가지고 다니다가 너무 무게만 집착하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조금 더 큰 1~2인용 텐트를 가져간 것이 그나마 큰 다행이었다.

 

장기간 여행에서 느끼기 쉬운 외로움은 전혀 없었다. 오랜 단독여행이 몸에 익어서일까, 아니면 오다 가다 만나는 사람들과 심심치 않게 대화를 할 수 있어서일까. 나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들을 만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들의 이메일 주소를 많이도 받아왔다. 그 사진들을 모두 포스팅하면 그들에게 나의 블로그를 소개하여 줄 것이다. 나만큼 알래스카의 여러곳을 자전거로 여행한 사람도 드물 것이며, 무엇보다도 나만큼 알차게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이 사진들은 자전거 여행자가 아니면 촬영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 많다. 주행속도가 빠를수록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경치를 포착하기도 쉽지 않고, 포착하였다 하더라도 정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의 최대장점은 정지하고 싶을 때는 언제던지 정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