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비
아침에 눈을 뜨니 텐트안 온도가 8도이다. 그렇다면 바깥 기온은 5도 정도일 것이다.
간밤에는 추위가 겁나서 텐트 환기구 한쪽을 막아버리고,
침낭의 머리부분을 완전히 조여서 입만 외기를 흡입할 수 있도록 해서 잠을 잔 것이 효과가 있어서
바지와 보온 셔츠를 입지 않고 잠을 잤는데도 춥지는 않았다.
역시 오늘도 비가 내리면서 안개구름이 자욱하다. 새벽같이 출발하려고 했는데 차질이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랑비가 끊임없이 질척거리면서 내리고 있다.
그래도 지붕이 있어서 빗방울이 텐트막을 직접 때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텐트안은 춥고, 축축하고, 을씨년스럽게 캠핑장에는 홀로 남겨졌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다.
오전 8시 이전에 출발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이미 글렀다.
내일도 비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이곳의 기상이다.
이곳에서 2마일 떨어진 Thomson Pass를 넘어면 곧 추가치 산맥을 넘을 것이고,
그러면 기상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굳이 비를 맞으면서 라이딩할 것도 없지만 우중에 톰슨패스를 넘고 싶지는 않다.
텐트안 온도계는 9도에서 멈춰 있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좌정을 조금 하고 나니 무릅이 아파서 조금 누웠다.
처마밑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이 텐트막을 계속 때리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진영농업고등학교 사택에서 살던 때의 장마철 생각이 난다.
비가 오면 천장으로부터 비가 새서 방바닥에는 다라이, 세수대, 그릇 등 4~5 군데를 바쳐야 했고
좁은 방은 앉을 자리도 부족했다.
장마철이라 젖은 벽장속에는 하얀 벌레가 기어다니곤 했다.
부엌의 연탄아궁이는 물이 가득 고여서 연탄을 꺼집어 내고 물을 퍼내어야 하는 곤욕을 치루곤 했고
젖은 아궁이에 연탄불을 다시 피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비를 좋아하지 않고 장마철은 특히 싫어 하는데 놀랍게도
장마철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말대로 개구리띠인 모양이다.
오후 4시경이 되자 새가 날아와서 지저귄다. 비가 그쳤다는 신호인가?
이 순간 조용하다. 텐트를 때리는 빗방울 소리도, 텐트가 펄럭이는 소리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도, 호수의 물결이 찰삭대는 소리도 그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만이 정적을 깬다. 제발 비야 그쳐다오!
혹시나 싶어서 텐트밖을 보니 안개 구름이 꽉 끼어서 시계가 불과 몇 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오후 6시가 되자 텐트안 온도는 다시 8도로 떨어졌다. 춥다.
오늘 밤은 몹시 추울지 모르겠다. 침낭도 습도가 높아져서 보온력이 떨어질 것이다.
저녁밥도 짓지 말고 햄버거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발생한 수증기는 결국 텐트안 습도를 높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추위 때문에 환기구를 닫아버렸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저녁에 캠핑장 관리인이 나의 텐트로 찾아 왔다. 캠핑사이트 요금을 자율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요금은 차량 한 대당 $10로 되어 있었는데,
차량이 없이 텐트만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난한 텐트 캠퍼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게 아닐까?
아마도 그럴거야!
그렇지, 돈을 내지 말고 내일 아침에 슬그머니 자리를 뜨자. 뭐 이렇게 된 것인데
부지런한 관리인이 비를 맞으면서 기어코 찾아온 것이다.
관리인이 오면 불쌍한 바이커는 공짜가 아니냐고 능청을 떨 작정이었으나
텐트안에서 얼굴을 디밀고 관리인에게 그 말을 하기에는 나의 낯이 두껍지 못했다.
그래서 $20를 내밀면서 어제는 $10짜리가 없어서 자율지불을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10짜리가 없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가 $10를 거슬러 준다.
짐짓 정직한 척하면서 어제 오늘 이틀이니 $20가 맞다고 했더니 Biker니까 $10만 내란다.
잌! 고마운거! $10벌었다.
그도 축축한 텐트안의 꾸지리한 살림살이를 보고서는 동정심이 생겼을 것이다.
사실, 미국에는 Biker와 Hiker에게는 $4만 받는 캠핑장도 있었다.
그는 마일포스트(Milepost) M52에 좋은 캠핑장이 있다는 정보를 주고 떠나갔다.
그러니까 여기서 26마일만 가면 캠핑장이 있다는 것이니까
내일 비가 오더라도 여기를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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