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sk

에필로그(Epilogue)

박희욱 2012. 8. 24. 10:03

내가 알래스카에 가고싶었던 것은 광활하고도 광막한 대자연의 풍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평선만 보인다고 그런 풍광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시베리아 벌판이나 아르헨티나 팜파 같은 곳은 지평선만 보이는 곳이지만 내가 원하는  그런 풍광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알래스카에서는 그런 풍광을 디날리국립공원과 디날리 하이웨이를 비롯한 몇몇 군데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 풍광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티벳고원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고, 골드 스미스 교수의 말로는 몽골에서도 그런 풍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알래스카보다 더 좋은 자연경관을 가진 곳은 이 지구상에 많이 있을지 모르나 알래스카만큼 넓은 지역에 걸쳐서 그런 훌륭한 경관을 가진 곳은 아마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알래스카는 지구 최후의 관광지가 될지도 모르고, 이미 수많을 RV 차량이 키나이 반도에서는 붐비고 있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평소 나는 미국인들에게 당신들은 해외로 나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 그러한 것 같다. 1867년에 알래스카 땅덩어리를 미국에 팔아먹은 러시아는 얼마나 배가 아플 것인가! 진실로 러시아에 동정이 간다. 720만 달러에 팔았는데 지금의 가치로는 16억 7천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헐값에 팔아치운 이면에는 러시아의 제정상태가 무척 어려운 지경에 처한데다가 영국에게 무력점령당할 경우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알래스카 현지인은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여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추위보다는 흐린 날씨 때문에 짜증나는 날이 많았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은 날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계속 이렇다면 자전거여행을 중단하고 차량을 렌트하여 여행을 마쳐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앵크리지와 그 남쪽이 그러했고, 페어뱅크스 쪽도 8월에 들어서면 강우량이 서서히 증가하는 것 같다. 알래스카 여행의 성수기는  7월과 8월 초순인데 맑은 날을 보겠다면 5월말과 6월 초순이 적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전거는 큰 트라블은 없었지만 디레일러의 조정이 잘 못 되어서 스프라켓 3단에서 튀는 현상이 일어나서 좀 애를 먹었다. 발디즈에서 자전거 샾을 찾았으나 없어서 그냥 톰슨 패스를 넘느라고 짜증이 났다. 천만 다행히도 치트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독일 자전거투어 팀을 만나서 손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경미한 트라블로서는 앞바퀴의 회전이 미미한 저항을 받는 현상이 일어 났는데 이것은 와실라 자전거 샾에 가서 브레이크를 새 것으로 교환함으로써 해결을 하였고, 튜블레스 뒷바퀴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해도 곧 바람이 빠져서 자전거를 못 탈 정도는 아니지만 저압으로 유지 되는 현상이 나타나서 페어뱅크스 비버스포츠에서 실런트를 주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특히 디레일러 조정기술은 반드시 습득해 놓아야겠다.

 

비를 맞으면서 주행할 때나, 비 때문에 텐트속에 하루종일 갇혀 있을 때나, 맞바람을 맞아서 무척 힘이 들 때나, 이런 때는 자전거 여행이 회의적일 때도 있었다. 뉴질랜드 여행을 마치면서도 이제 자전거 여행은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그러나 여행의 말미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자전거 여행의 맛은 다른 어떤 교통수단으로서도 느낄 수 없는 고유의 맛이 있다. 자전거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슴벅찬 감동을 다른 여행으로서는 얻을 수 없다. 자전거가 아니면 여행중에 눈시울 적시는 그러한 감동을 어떻게 얻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사진들은 자동차 여행자는 좀처럼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나는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못한 지역이거나, 알래스카 처럼 캠핑장 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서의 자전거 캠핑여행은 더 이상 하지 못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외로움을 한 번도 느끼지 않았다. 처음 여행을 할 때는 외로움도 무척 많이 느끼기도 했다. 사실, 내가 2개월이나 3개월을 여행할 때는 외로움의 극한까지 가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여행중에 현지인이나 다른 여행객과 많이 접촉을 할 수 있어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다. 여행중에는 혼자다니느냐고 물어보면서 확인하거나,  왜 혼자서 다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to experience being alone'이라고 하거나, 'to shed tears'라고 답한다. 둘 이상이 함께 여행을 한다면 여행중에 일어나는 일을 나눠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편리하고, 특히 캠핑의 경우는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을 때는 그 만큼 불편한 것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기간이 1개월 이상이 되어보라. 어찌 견딜 것인가.  앞으로도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여행할 것이다.

 

귀국할 때 비행기를 환승한 시애틀 공항에서, 면세점을 경영하는 어느 한국인 여주인은 나를 보고서 고생스런 생활을 해봐야 편한 생활을 즐길 줄 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그 고생이 꼭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고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그 말에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대자연과의 교감을 해봐야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귀국을 하고 보니 요즘은 묻지마 살인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 많이 일어나나 보다. 살기가 여려워지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데, 먹고 살기가 바빴던 옛날에는 별로 없었던 일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옛날에는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는 사람은 있어도 자살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허망한 환타지적, 관념적 가치에 몰두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이 끊긴 상태에서 삶의 기쁨을 느끼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가지끝의 나뭇잎이 가지를 떠나서 아무리 하늘 높이 날아올라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의 기쁨은 눈과 머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과 다리에서 오는 것이다(The real delight of living comes from the body & legs, not from the brain & eyes).

 

언젠가는 알래스카를 다시 여행하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도 여행하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아시아에서는 티벳 라싸와 네팔 카트만두 간 자전거여행, 실크로드, 몽골대초원 자전거 여행, 히말라야에도 한 두번 더 가야하고, 미국에서는 죤무어트레일 트레킹, 블루리지 트레일 자전거 라이딩, 뉴욕 문화여행, 남아메리카, 북유럽, 유럽 음악여행 등 수많은 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또, 오스트레일리아도 나를 손짓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를 아내와 함께 미루었던 결혼 30주년 기념여행을 하고 싶다. 

 

죤 무어의 말처럼 알래스카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구 최고의 여행지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대는 나무가지 끝의 잎새이다

 

잎새는 땅으로부터 줄기와 가지를 타고 올라온 정기를 먹고

 

공중으로부터 산소와 탄산가스를 흡입하고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살아가는 수많은 나뭇닢의 하나이다

 

그 잎새와 마찬가지로 그대는 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일 뿐, 하나의 개별적 존제가 아니다

 

그런 그대가 어느날 생명이 다하여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가

 

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동안 눈, 비, 바람, 햇빛 가릴 것 없이 마음껏 즐겨라1

 

그런 연후 땅으로 돌아가는 날 죽음을 환영하고, 삶에게 미련없이 안녕이라 고하라

 

만일, 죽음이 없다면 삶은 즉시 정지 된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 삶죽음이 있을 뿐이다.


 

 

 

아래는 민족의 원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62세에 죽음을 앞두고 남긴 절명시이다.

 

이슬처럼 떨어졌다 이슬처럼 사라지는게 인생이런가!

세상만사 모두가 일장춘몽 이로세!

  1. 여기서 즐긴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오는 어떤 기쁨을 의미한다. 결코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즐거움 즉, 재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