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sk

8월 07일 귀국(The day going home looked forward)

박희욱 2012. 8. 24. 09:54

날씨: 맑음

 

   산책을 다녀온 다음에 스콧의 승용차를 타고서 자전거 샾에 가서 어제 포장을 맡겼던 자전거를 찾았다. 당장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오늘 오후에 오라고 하더니 주저없이 $45를 요구하는 것이 무척 얄밉다. 바가지를 팍 쒸우는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세계에서 최고로 비싸군요!" 라고 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어제 산 헬멧도 바람막이로 교환하였다. $60짜리라 무척 싸다 싶어서 견물생심으로 샀는데 무게가 많이 나가고 턱근의 조절이 불편한 것이었다. 바람막이는 $105 짜리 펄이즈미였다.

 

  공황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였다. 여기서 다음날 새벽 1시 43분 시애틀행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무려 1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다. 스콧은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를 염려했다. 옛날에는 나는 기다리는 시간을 누구보다도 지루해 한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고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정말 나에게는 시간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인가 모르겠다. 사람들은 시간을 물리적인 어떤 량으로 여긴다. 아니다. 시간은 단지 마음의 현상일 뿐이다.

 

  체크인을 빨리하고 대기실에 가서 푹 쉬려고 줄을 1시간 동안이나 섰는데 내 차례가 되어서 카운트에 섰더니 출발시각 4시간 전부터 체크인을 받으니 더 기다렸다가 오란다. 그 시각인 오후 9시 43분이 지나서 카운트에 섰다. 이 여성 근무자가 나를 앞에 세워놓고서 20~30분을 기다리게 했다. 그 동안 전화통을 들고서 자전거 박스의 크기를 줄자로 3번이나 측정을 하면서. 어디에 전화를 했냐 하면 아시아나 항공에 전화를 해서 이 경우 오버챠지를 얼마나 받아야  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인천에서 시애틀까지 아시아나로 올 때는 오버챠지가 없었다. 22kg짜리 2개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시애틀에서 앵크리지로 올 때는 자전거 박스의 무게가 22kg을 초과하고 오버사이즈라는 이유로 $75의 오버챠지를 지불했었다. 그래서 오버챠지가 좀 신경이 쓰였기도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얼마든지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서양인들의 근무 태도를 조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불평없이 끈기 있게 기다렸다. 체크인을 받는 근무자는 둘 뿐이고 내 뒤에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우리 같으면 대충해버릴 텐데 이 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근무자는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고, 나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줄을 선 승객들도 입도 벙긋하지 않고,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기다렸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만일,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황이 있었다면 승객들이 난리를 쳤을 것이 아니고,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잘 못된 성향을 하나 지적한다면 남의 일에 쉽게 간섭을 하려고 하고 타인의 업무를 존중해 줄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고, 어떤 때는 모두다 전문가인 것처럼 보인다. 병원에 오는 환들 중에는 앉자 마자 자가진단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그를 때면 의사들은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한국사람들은 아무 사안이나 바깥으로 드러난 모습을 가지고 쉽게 이러쿵 저러쿵 비판과 비난을 쏟아낸다. 많은 경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사안을 판단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너와 나의 구분이 없고 하나라고 느끼기 때문인가.  

 

  20~30분을 끈기 있게 기다린 결과는 노우오버챠지! 참으로 웃긴다. 좋아서 웃고, 우스워서 웃고. 한국에서라면 줄을 선 뒷 사람들에게 내가 미안해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각자 자기일에만 신경쓰는 것이고 또 그것을 인정해 줄줄 아는 것이다. 그 결과 줄은 더욱 길어졌고 체크인을 받는 근무자가 둘 더 투입이 되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자기 분야와 전혀 다른 곳에 나타나서, 아무런 경험도 없이 인기에 편승해서 그 분야의 수장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시장바닦에서 국수를 말아서 팔아도 노우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플라톤이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정의란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라고.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正義를 가장 잘 定義한 명언으로 보인다. 그가 수장이 되어서 잘 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그 결과는 나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남의 일에 간섭하여 성공하는 사례가 되고, 그것이 불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발 자기 일에만 충실하자. 그러면 대한민국의 앞날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앵커리지 공항(Anchorage Airport)

 

스콧의 집에서 출발하여 자전거 샾에 들러 포장한 자전거 박스를 받아서

공항으로 온 것은 오후 2시 쯤이었다.

 

스콧이 한국에 들린 것은 인천공항에서 몽골로 가는 대한항공을 환승할 때 9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잠깐 서울시내를 둘러보았다고 한다.

소감은 서울의 공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했다.

내가 봐도 그러한데 그에게는 오죽했겠는가.

나는 내가 미국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푸른 하늘이라고 했고,

한국의 하늘도 옛날에는 그러했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늦봄에 누렇게 익은 보리밭위로 종달새가 하늘 높이 지저귀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뭉개구름이 피어오르던 어린 그 시절이 그립다.

비록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덥고, 먹고 싶은 것은 많았던 배고픈 시절이었긴 하지만.

 

 

 

Professor emeritus Scott Goldsmith

I appriciate for your kindness and friendliness.

I hope you to visit Korea in someday.

고마운 그에게 작별의 포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자전거 박스의 무게를 22kg 이하로 하여 오버챠지를 물지 않도록 하였다.

 

 

 

Bob Grubel(62세), Pianist

4개월 전에 출산한 딸내집에 들러서 손자를 보고

알래스카를 2주간 여행하고 앵크리지에서 피닉스를 경유하는 비행기로 버지니아로 돌아간단다.

나의 비행기는 밤 1시 43분, 그의 비행기는 밤 1시 40분 출발이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느냐고  물어보니 팝, 째즈, 클래식 등, 이것 저것이라고 했다.

singnbob@hotmail.com

www.cdbaby.com/bobgrubel

 

 

 

 

 

 

 

곰짝하지 않고 1시간 정도 좌선을 하고 나니 무슨 명상을 하느냐고 물었다.

특별한 명상법은 없고 그냥 묵상을 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자기도 고엔카 명상센터(Goenkar Medidation Center)에서 위빠사나(Vipassana)를 3번 수련을 받았다고 했다.

그 명상센터는 세계 곳곳에 있고, 인도에도 있는데 나도 인도에 갔을 때 그 명상센트를 찾아볼까 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차례대로 이렇게 물었다.

"라즈니쉬(Osho Rajneesh)를 아느냐?" , "아! 알지요. 나는 한국어로 변역된 그의 저작을 거의 모두 읽었지요."

"마하리쉬(Maharish)를 아느냐?", "그럼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각자이지요."

"마라라지(Maharaj)를 아느냐?". "물론이지요. 나는 그의 '아이 앰 댓'과 '의식을 넘어서'를 애독하고 있지요"

 

이럴 수가!

한국에서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접촉한 일이 없는데 여기 앵크리지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다니!

나는 무척 반가웠다.

나는 그에게 이제 동서양이 구분은 의미가 없으졌다고 말했고 그도 동의했다.

 

Bob은 나와 같이 오후2시경에 공항에 도착하여 오후 9시 40분이 될 때까지 함께 있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그는 나에게  자기 고향근처에 있는 'Blue Ridge Trail'의 자전거 라이딩 과제를 던져 주었다.

나도 그 트레일의 명성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트레일은 경치가 끝내주고, 도로변의 캠핑장 시설도 많을 뿐더러 시설도 좋다고 한다.

그 길은 자전거 트레일일 뿐 아니라 자동차 드라이브 길이기도  하고 워킹 트레일이기도 하단다.

나는 이제 자전거 여행은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귀국도 하기 전에 생각이 벌써 슬며시 변덕을 부린다.

 

 

밥이 '타이치'를 하겠다고 해서 뭔가 했더니 태극권이었다.

 

 

 

그는 이 태극권을 3번이나 했다.

 

 

 

태극권도 신체를 이용한 명상의 하나일 것이다.

 

 

 

돈독이 올랐는지 $4를 투입하여야 카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동전을 넣어도, 지폐를 넣어도, 신용카드를 넣어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데 짐꾼 한 놈이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카트 하나를 끌고와 손을 내민다.

그 자식이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이 안냇말에는 영어 외에는 한글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두번째로 많이 드나든다는 것은 아닐테고.

 

 

 

 

 

 

 

쌍둥이

 

 

저녁 노을

아침노을보다는 져녁노을이 더 아름답고 더 평안하다.

탄생보다는 죽음이 더 장엄하고 평안할 것이다.

여행의 출발의 기쁨보다는 여행의 끝이 더 평안하고 기쁘듯이.

 

 

 

 

 

 

 

 

 

비행기 좌석에서

카테고리 '지구에서 가장 포근한 음악'이 흐른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이다.

지금 그 음악이 포근한 것은 내가 거친 여행을 했기 때문에 그토록 눈물겹도록 포근한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그런 힘든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기쁨으로 벅찬 가슴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시애틀 공항

 

처음에는 인천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의 탑승구를 찾지 못해서 조금 당황하였다.

그렇게 큰 공항에 안내인도 없고, 안내판도 없고,

타임테이블에도 9시간이나 남았기 때문에 나의 항공편이 나타나 있지도 않았다.

탑승구조차도 델타항공에 더부살이 하기 때문에 아시아나 항공의 표지판도 없었다.

 

시애틀에서도 환승을 하기 위하여 9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무엇을 했는지 쉽게 시간이 지나갔다.

 

 

루이 13세

별도의 두껑이 따로 있는데 그것이 진짜 크리스탈이라나 뭐라나.

 

시애틀 공항에서 처음 본 꼬냑 루이 13세

$2,650

어떤 사람이 사가지고 가느냐는 질문에 중국인들이 사간단다.

어떤 중국인은 4병을 1만 달러에 사갔다 한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돈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중국인들에게는 큰 뇌물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루이 13세의 가장 큰 소비자는 중국공산당 간부들일 것이다.

 

평등에 바탕한 사회주의는 안된다.

평등을 유지시키기 위한 절대권력이 절대로 필요하고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오랜간만에 먹는 비빔밥이 환상적이었다.

인천을 거쳐서 하노이로 가는 옆 좌석의 미국인이 먹고 있는 스테이크가 우습게 보였다.

 

 

 

레드와인도 마셔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고, 개인적으로 요청하여 아직도 많이 남은 꼬냑도 마셔야 하고,

 어느것부터 먼저 먹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맥주도 한 캔 더 요청하고 싶고!

 

 

인천공항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검색대를 통과할 때는 약간 긴장하였다.

"자전거는 거기서 산겁니까?"

"아닙니다. 가지고 나간 겁니다."

"작은 박스는 뭐요?"

"텐트랑, 침낭이랑. 취사도구랑 뭐 그런 것이지요"

                    .

                    .

                    .

"됐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작은 박스에는 꼬냑 두 병과,

기내에서 욕심을 부린 위스키 한 병이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무사히 통과하고 공항 밖으로 나왔지만,

거기서 또다시 부산 노포동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근 2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늦은 저녁이라 힘껏 달릴 수 있었던 버스가 부산 노포동에 도착한 것은 8월 10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나쁜 아내는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쿨쿨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씰데 없이 보고싶어 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