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바둑황제 조훈현

박희욱 2015. 6. 22. 21:59

바둑황제 조훈현은 그의 에세이집에서 스승 세고에 겐사쿠에 대한 회상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9년 동안 선생님에게 바둑을 배운 적은 그야말로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선생님은 지도대국에 매우 인색하셨다. 아주 가끔 복기를 해보라고 하는 것 외에는 거의 말씀도 잘 안 하셨다.

 

어린 마음에 서운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연세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어두워진 건 아닐까, 나를 왜 불러들였는지 잊으신게 아닐까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몇 년이 흐르고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어느날 저녁 식사 때 선생님이 내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답이 없는 게 바둑인데 어떻게 너에게 답을 주겠느냐. 그 답은 네 스스로 찾아라."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바둑이다."

 

정말로 9년 동안 함께 살면서 세고에 선생님은 나에게 바둑을 어떻게 두라든지,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두라는 식의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내가 밖에 나가서 누구와 어떤 바둑을 두고 돌아다니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일체 간섭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야말로 아무 틀 없이 자유분방하게 바둑을 배웠다.

 

나는 조훈현 국수의 회상과 같이,

인생에 있어서도 답은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마치 양파껍질을 까는 것과 같이 한 꺼풀을 벗기면 나타나는 것이 알맹이라 여기지 말고 계속 까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텅빔만이 남을 때, 그 텅빔이 바로 답 아닌 답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살라고 하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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