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온 글

조훈현과 이창호

박희욱 2015. 6. 24. 08:57

1991년 말이 되자 창오는 7관왕에 올랐고 나는 4관왕으로 내려앉았다.

창호가 우리집을 떠난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리 일상과 같다고 해도 한집에서 매일 얼굴을 보면서 사는 건 어색했다.

창호는 처음 우리집에 들오올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하고 우리집을 떠났다.

아내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를 썼고 나는 말없이 창호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창호가 독립한 후 그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그무렵 나는 창호와 경기를 할 때면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지경이 되곤 했다.

아침에 시작한 대국이 저녁 10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머릿속에 고도의 계산을 펼치느라 온몸이 분해될 지경이었다.

나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는데도 의자에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바둑을 두어야 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臥棋'라고 점잖게 표현해주었으나 사실은 열여섯 소년의 쿠데타에 무너져 내리는 슬픈 몰락의 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거의 모든 타이틀을 넘기고 작은 타이틀 하나만 붙잡고 있는데 창호는 이것마저 놔두지 않았다.

1995년 2월 나는 창호에게 마지막 남은 대왕 타이틀까지 빼앗겼다.

20년만에 어떤 타이틀도 없는 무관의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유난히 마음이 평화로웠다.

모든 걸 잃어버렸는데 이상하리만치 홀가분 했다.

며칠 동안 실컷 잠을 자며 휴식을 취햇더니 몸도 기분도 더 좋아졌다.

꼭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때의 기분이었다.

지키려고 할 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막상 다 잃어버리니 자유로웠다.

 

그래,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이제 더 나빠질 게 없어.

지금부터는 올라갈 일만 남은 거야.

한발짝만 움직여도 일보전진이 되는 거니까.

 

이런 긍정적인 생각이 마구 솟아났다, 아마도 살려고 그랬을 것이다.

계속 고통과 분노에 싸여 있으면 죽는 길박에 없으니까, 살고 싶어서 이런 생각을 해냈을 것이다.

 

이기고 지기를 그토록 반복했지만 승패에 정말로 초연해지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수많은 판을 싸우면서 나는 내기 언제든지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드렸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얼굴에 웃음이 많아지고 농담도 잘하게 되었다.

후배들에게 살살 좀 하라고 음살을 피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시간이 한참 흘러 2011년 이창호가 무관이 되었을 때 언론과 나눈 인터뷰를 보았다.

심경을 묻는 질문에 창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막상 지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무관이라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더 좋은 바둑, 더 좋은 내용을 보여줄 수 있다면 된다."

 

그걸 보고 나는 씽긋 웃었다.

창호는 이제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바둑을 둘 뿐이다.

비로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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