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삶과 죽음

박희욱 2023. 3. 7. 10:39

스펜서(Spencer, H.)는 

사람들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하나다,  즉 不二이다.

삶과 죽음은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하나의 동체다.

삶에 죽음이 스며 있지 않으면 삶은 곧 정지되어버리고 만다.

시몬느 보봐르의  소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를 읽어보면,

영생의 영약을 마신 주인공이 벽장속에 몸을 처박고서

먹지도, 배설하지도, 잠자지도 않는 가사상태에 빠진 주인공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삶을 제대로 산 사람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식사를 만족스럽게 끝낸 사람이 음식에 대해서 관심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않았다면, 죽음에 대한 관심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관심이 유효한 것은 죽음을 생각하다가 삶을 알게 되는 경우 뿐이다.

사원으로 들어간  승려들처럼 삶을 체념함으로서 죽음을 체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제대로 살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일소하지는 못한다.

충만히 산 사람이라면 죽음을 환영하게 되어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곧 안식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그러니 죽음을 알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오늘 충실히 자신의 삶을 살면 죽음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므로 종교를 가질 필요도 없다.

자신의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사회도 필요없고 종교도 필요없다.

그런 사람은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갈 수 있다. 한 개인을 속이기는 어려워도

무리지어 놓으면 속이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사랑과 봉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무리지어서 사회에 얽매이도록 하며, 천국이나 극락같은 후생을 약속하면서

현세에서 그들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도록 유보시키거나 은근히 저해한다.

그래야만 죽음이 두려운 신도들을 사원에 붙들어 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삶을 충실히, 그리고 충만히 살아라, 그러면 죽음의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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