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은 말했다.
"때가 되면 기꺼이 죽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만한 명언을 나는 모른다.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기꺼이 죽어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곧 삶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
해탈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삶과 죽음은 不二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스스로 올랐던 것도
기꺼이 죽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곧 부활이며, 다른 부활은 없다.
기독교 사제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죽을 때 기꺼이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이며, 다른 해탈은 없다.
그리고, 그 해탈이 곧 부활이다.
H. Spencer는 인간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들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신에 의지하여 죽음을 극복하려고 든다.
하지만, 신이란 실존하지 않는 영어의 가주어 it와 같은 것이며,
그 it는 알고보면 myself다, 그 외의 신은 없다.
말하자면, 人乃天이므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라.
영생은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우니, 해탈해서 부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