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어느 SNS에 올라온 글인데, 댓글 13개가 모두 환호성 댓글이다.
부르주아지, 즉 자본가에 대한 대단한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어서 나는 놀랍다.
그들 댓글자들은 모두 노동가치설의 신봉자들이었다.
과연 장래에 대한민국이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내 생각에는, 행복은 사람나름이지 가진것의 과다에는 관계가 없지 싶다.
세계최빈곤국 방글라데시인이 가장 행복했던 적도 있었고, 엄청난 금액의 복권에
당첨된 미국인들을 조사해보니 90%가 당첨 전이 더 좋았다고 조사된 경우도 있다.
빅토르 위고는 칼 마르크스(1818년~1883년)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문외한인 내가 볼 때는 근대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의 혼라스런 시대였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1787년~1799년)을 거친 후,
부르주아지에 의한 봉건주의 시대가 정리되고 있을 시기였을 것이다.
영국보다 50년 뒤진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서
노동력 과잉의 시대에 노동자의 생활은 피폐했을 것이고,
반대로 지배계층과 부르주아, 지주, 성직자 등은
상대적으로 부를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빅토르 위고와 같은 과격한 발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문필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으로
170여년 전 빅토르 위고의 과격한 발언에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스스로 책임을 질 때 가능한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누구인가?
무능력자, 게으런 자, 낭비벽인 자, 투자실패자, 사기당한 바보, 재수없는 자, 등이다.
만일 가난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부자,
즉 자본가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러면 지옥에 살던 가난한 자들은 낙원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지옥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고, 도리어 지옥의 열탕 수온만 더 올라간다.
이것은 지난 70여년의 실험에서 여실히 증명된 사실이다.
프롤레타리아들은 부르주아지 덕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다.
어느듯 보라빛으로 물들어버린 한반도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