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881

죽음과 부활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바닷속 물고기가 물 바깥에서 사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우주속 생명체가 우주바깥에서 사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비록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생명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 생명은 우주와 같아서 한계가 없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해탈이며 그것이 바로 부활이다. *실제로 우주에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장하면서 인간의 대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죽음도 시간과 공간과 같은 하나의 개념이다. 개념이 없는 하루살이는 죽음이 없다, 영생한다.

기도와 명상

기도와 명상이란 이완이다, 집중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간에 맞춰서 정좌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이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얶메여서 산다, 마치 생각이 자신의 신인 것처럼! 생각이 얼마나 교활한 것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 생각없이 하는 모든 행위가 명상이 될 수 있다. 이완해 있을 때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긴장해 있을 경우에만 생각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아무 생각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무념이고 무심이며, 이것이 바로 기도이고, 명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일이 기도이고 명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의 성공

인생에 있어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성공적으로 성취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입신양명하여 온 세상에 이름을 날려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다 해도 그것이 곧 자신의 인생이 성공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생에 있어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다름아닌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과 이별을 할 때도 아무런 후회함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필요한 일만 한다는 것이고, 필요한 일만하는 사람은 반드시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다. 새로운 경험으로 지혜가 쌓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의 내면적 성장에 있다. 외면적 성공은 죽으면서 모두 뒤에 남겨두고 가야 하지만 자신의 내면적 ..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사람들은 곧 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친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두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은 죽음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경우에는 죽음이나 이별이나 사실은 같은 말에 불과하다. 그 이별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고, 세상일 수도 있다. 결국, 죽음이 두렵지 않으려면 사람과, 사회와, 세상으로부터 독립변수가 되어야 한다. 그것들과의 관계를 끊지는 않는다 해도,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佛家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첨탑에 올라가는 길은 반드시 혼자서만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깎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수도원으로 들어가 숨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럴..

기꺼이 죽을 줄 알아라

법륜스님은 말했다. "때가 되면 기꺼이 죽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만한 명언을 나는 모른다.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기꺼이 죽어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곧 삶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 해탈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삶과 죽음은 不二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스스로 올랐던 것도 기꺼이 죽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곧 부활이며, 다른 부활은 없다. 기독교 사제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죽을 때 기꺼이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이며, 다른 해탈은 없다. 그리고, 그 해탈이 곧 부활이다. H. Spencer는 인간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들은 믿음이라는 ..

행복론

행복이란 자신의 정신적 성장의 그림자이다. 불행이란 자신의 정신적 퇴락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을 논한다는 것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를 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인류역사상, 수많은 사람이 행복론을 설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공염불이었다. 사람들이 행복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고 하는 말은, 바로 정신적으로 성장한 자신의 내면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무념과 지혜

결국은, 모든 윤리도덕과 덕목들은 하나의 지팡이에 불과하다. 지팡이는 신체발달이 덜 되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필요하지만 제대로 성장한 건강한 사람에게는 거추장스런 장애물이다. 그렇듯이 윤리도덕이나 덕목 또한 그런 지팡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경험을 중시하고, 자신의 경험이 없는 경우는 타인의 경험을 존중하라. 자신의 경험이 쌓여서 거기서 어떤 앎이 축적되면 그것이 바로 지혜다. 윤리도덕이나 덕목이 씌여 있는 경전으로써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다만, 그러한 것들은 자신의 경험을 비춰보는 거울이 될 수는 있다. 윤리도덕과 덕목은 어디까지나 정형화된 개념이나 관념이지, 무념이 아니다. 반대로, 지혜는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달리 감응한다. 높은 지혜는 무념의 상태에서 나오는 직관이다. 그..

죽음과 욕망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죽음 자체는 영원한 안식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은 욕망추구의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려와 사제들은 욕망의 포기를 권유하고, 죽음 다음의 천국이나 극락을 약속함으로써 죽음을 위로하려고 든다. 그러나 욕망의 포기는 곧 삶의 포기다. 게다가 유보된 욕망은 또다른 욕망으로 이전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떤 욕망을 하는가이다. 그대는 무엇을 욕망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