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앵무새 예수는 실패했다, 괜히 십자가에 올라간 것이다.앵무새에게 사랑을 가르치면앵무새는 사랑이라는 말은 배울 수 있겠으나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인간도 동물이기는 앵무새와 마찬가지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침묵으로 가는 길 06:29:09
색즉시공 공즉시색 Je pence, donc je suis!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그 비존재(非存在)가 참나이다.존재는 비존재이고, 비존재가 존재이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28
참나-순수의식 나는 나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후회할 나가없기 때문이다.나는 나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걱정할 나가 없기 때문이다.후회하고 걱정하는 나는 나가 아니라 나의 생각일 뿐이다.생각의 나는 현재에 존재할 수 없고, 항상 과거나 미래에 존재한다.지금 이순간의 나는 나가 아니라 순수의식이며,그 순수의식을 일러 참나(나)라 한다.그 참나(나)는 단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생각의 나는, 곧 마야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28
식자우환 식자우환(識字憂患 )이라는 말이 있다.나는 이것을 식자우환( 識者憂患) 쯤으로 오해하고 있었다.즉, 지식을 가진 사람이 우환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속담이겠거니 했는데 중국에서 건너온 말이었다.소동파의 시에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라는 구절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구절을 지식우환(知識憂患)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고싶다.내가 세상에 대해서 우려하고, 불만을 가지는 것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때문이다.그 지식은 내가 깨달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수위 말하는 교사들이 내게 주입시킨 것이었다.나는 이제 모든 지식을 내려놓고 싶다.지식으로부터의 해방이 바로 자유인 것이다.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28
완전한 세상 언어가 사라지면, 다시 말하면 사념이 사라지면, 비로소머리에서 이루어지던 삶이, 가슴으로 내려온다.그곳은 음악이, 미술이, 시가 숨쉬는 곳이다.가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좋다.기쁨도 좋지만 슬픔조차도 좋다. 그때 비로소헷세가 말한, 있는 그대로의 완전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전축으로써 들어본 것이 이 노래였다.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27
전생의 業과 非人間 신념은 해악일 뿐이고,모든 이념, 개념, 상념, 그리고 관념조차도 버리리라.그리하여 무념이 되는 것이다.그러면 내게 남는 것은 의식과 본성 뿐이며,그 의식과 본성이 곧 나이고, 다른 나는 없다.그 의식과 본성은 이생과 관계없는 전생으로부터 유전된 것이다.다시 말하면, 그것이 곧 내 전생의 업이며, 그 업대로 사는 것이다.그러면 非人間이 되는 것이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26
생각과 가슴 희망과 실망은 동행관계이다.사랑과 미움도 동행관계이다.행복과 불행도 동행관계이다.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이런것은 이원성의 언어, 즉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유일한 해법은 생각을 버리는 것, 즉 무념이다. 한편, 슬픔과 기쁨은 독립적이다.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서로 별개로 온다.이런것은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오는 것이다.가슴에서 오는 것은 생각으로 다스릴 수 없다.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음악이 슬픈 음악과 기쁜 음악이 있드시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19
이성과 생각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나 세상의 문제를이성, 즉 생각으로 풀려고 하나,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려니길은 오직 하나-그 생각을 멈추고 무념으로 가는 것.그 무념이 곧 무심이니오는 슬픔 마다하지 말며,가는 기쁨 괘념치 말고저만치 떨어져서 무심히 바라만 볼 지어다.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15
신과 자신 신을 믿는 자는 신을 기억한다.신을 신뢰하는 자는 신을 잊어버린다.마찬가지로,자신을 믿는 자는 자신을 기억한다.자신을 신뢰하는 자는 자신을 잊어버린다. 즉무아가 된다.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12
자신을 신뢰하라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신뢰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자신의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지식? 철학? 사상? 이념? 신념? 도덕? 그런것 다 필요없다.그런것은 유치한 보행기이거나, 잘해봤자 지팡이에 불과하다.붓다도 필요없고, 노자도 필요없고, 예수도 필요 없다.그런것을 모두 내다버린 텅빔, 즉 그대의 무념을 신뢰하라.침묵의 무념이 이끄는대로 살아라.그러면 그것이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다.자신을 신뢰하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다. *그래서 임종을 앞둔 붓다는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고 한 것이다. 노자의 도법자연도 그 텅빈 자신을 두고 한 말이며, 예수가 말한 신도 그와 다를바가 없다. 침묵으로 가는 길 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