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881

삶과 죽음

스펜서(Spencer, H.)는 사람들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하나다, 즉 不二이다. 삶과 죽음은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하나의 동체다. 삶에 죽음이 스며 있지 않으면 삶은 곧 정지되어버리고 만다. 시몬느 보봐르의 소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를 읽어보면, 영생의 영약을 마신 주인공이 벽장속에 몸을 처박고서 먹지도, 배설하지도, 잠자지도 않는 가사상태에 빠진 주인공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삶을 제대로 산 사람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식사를 만족스럽게 끝낸 사람이 음식에 대해서 관심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

세상을 버리다

세상을 버려야만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세상을 코앞에 두면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행복은 파랑새라서 쫓으면 달아난다 행복을 모른척 하면 행복은 슬며시 눈치보면서 멀리서 따라온다 사랑도 버려야만 행복처럼 다가온다 그 사랑이 예수가 말한 온유한 사랑이다 세상을 버린다고 해서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나가는 풍경처럼 관조할 수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참나

그대는 그대가 아니라 참나이다, 참나는 1인칭도 아니고 2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닌 무인칭이다 참나가 바로 무아이다 참나는 순수 침묵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비바람도 없지만 행복도 없는 순수 적막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삶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공간이다 인도의 참나가 서양으로 가서 영이 되었고, 동양으로 가서 무아가 되었다 참나는 그냥 있슴이다, 아니다 없슴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멘! 옴!

존재와 如來

이 오팔은 무슨 색인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인간의 언어로써는 불가능하다. 붓다는 대중들에게 이와같이 오팔 대신에 연꽃을 내밀어서 질문을 한 것이다. 어리둥절한 대중들은 순간 사념이 사라지고 침묵을 지켰다. 붓다는 그 침묵을 불러일으키려고 의도한 것이었고, 그 뜻을 알아차린 마하가섭만이 미소를 지었다. 붓다는 如來다. 그렇게 와서 그렇게 간 존재다. 거기에 말이 필요없다, 말은 사족이다.

무위

무위 존재(being)란 어떤 개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실존(existence)이다. 존재의 반댓말을 비존재(non-being)가 아니라 사념(thought)이다. 존재와 사념의 관계는 내용물과 포장지와의 관계와 같다. 사람들은 재산을 모으고, 명예와 권력을 얻고, 좋은 인관관계를 맺어서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념의 차원이다. 그러나 포장지로써는 결코 내용물을 변화시킬 수 없드시 사념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하니, 다만 무념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흘러감을 지켜보기만 하라. 이것을 동양에서는 무심이라 하였고, 서양에서는 영혼이라 하였으니, 모든 것을 영혼에 맡겨라. 인간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존재와 사념간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무위란 존재와..

행복

행복을 따라다니느니 차라리 행복에 눈길을 주지마라. 불행은 행복의 그림자이다. 그깟 사탕같은 행복 많이 먹어봐야 인생에 충치가 생기고 결국은 인생을 발치당한다. 어린아이일수록 사탕을 입에 달고 있드시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행복을 갈구한다. 성숙한 사람의 먹거리 목록에 행복이란 없다. (행복을 말한 성인이 있다면, 그는 이미 성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