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온 글

우리가 자연과 하나가 된다면

박희욱 2009. 4. 19. 07:07

그 오두막은 집으로부터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숲속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팬티와 신발만 남겨 놓은 채 우리의 옷을 모두 벗어 받아서는 집으로 가셨다.
할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우리는 봄이라도 맞은 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두막을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더욱 매서운 찬바람이 우리를 기다릴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매서운 바람은 눈발이 좀더 짙어질 때 몰아쳐 왔다.
먼저 나뭇가지들을 뒤흔들고 이어서 우리 주위에 누보라를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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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반도 못 가서 나는 춥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맛보기 시작했다.
온몸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추위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점점 더 약화되는 듯했다.
살가죽 바로 밑으로 물이 흘러내기면서 체온을 빼앗아 가는 듯했고, 그 때문에 더욱더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듯했다.
이빨이 딱딱 마주치기 시작했다.
집까지는 아직 5킬로미터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나는 릭에게 쉬었다가 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얼어붙고 목소리까지 얼어붙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몸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우리의 형제인 그 칼바람의 매서운 손길을 온몸으로 느꼈다.
바람이 눈송이로 뭄을 휘감아 우리는 눈송이의 고치가 되었다.
무슨 수를 써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추운지 과거에 내가 겪었던 온갖 취위가 한꺼번에 몰려와 온몸을 휘감아버리는 듯했다.
나를 둘러싼 냉기는 내 몸을 더욱더 거세게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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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들려주시곤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가 자연과 하나가 된다면, 자연은 우리를 해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추위에 저항하기를 그쳤다.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칼바람은 소나무숲 사이에 눈발을 마구휘날리며 웃고 있는 듯했고, 살을 에이는 추위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내가 걷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다시 몇 걸음을 옮겼다.
릭을 쳐다본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내몸이 다시 온기를 되찾아가고 있으며,
나를 떠난 추위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한시바삐 집에 도착해 할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눈으로 뭉쳐서 서로에게 던졌다.
바람은 얼마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고, 우리는 폭풍 속의 고요를 뚫고 할아버지 집으로 내달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곳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덥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고 옷을 되돌려주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추위라는 걸 느끼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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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삶에 관한 성스러운 기록, 트래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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