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신세계 백화점 방문기

박희욱 2009. 4. 19. 07:10

나는 오늘, 지난 3월 3일에 개장한 신세계 백화점을 구경하러 갔다.
그곳은 우리 아파트 바로 지척에 있다.
그러니까, 수영강 건너서 나루공원 바로 뒤에 우뚝 솟아있다.
지나다니면서 보면 그 규모가 엄청나서 마치 거대한 성곽처럼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옛날에는 나도 건물과 집은 클수록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뀐지 오래다.
의복이 몸에 맞아야 하듯이 그것들의 규모도 용도에 적당해야 한다.
사람이 집의 주인이 되어야지, 집이 사람의 주인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의 정신이 주체성을 잃는다.
아마도, 신세계 백화점은 바로 그 점을 노렸을 것이다.
고객의 마음을 압도하여 주체성을 무너뜨림으로써 백화점의 손아귀에 그들을 쥐어버리는 것이리라.
역대의 제왕들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궁전을 거대하고 화려하게 만들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나라를 망친 경우가 허다하지만.

매장 입구에 들어서니 멋진 모델이 첫눈에 들어온다.
아니나 다를까, 내부의 인테리어가 대단하다 못해 세계 최고의 수준인 것 같다.
누구라도 여기에 들어오면 기분이 우쭐해질 것 같다.
마치, 자신이 이러한 시설의 수준에 다달은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아마도 고객들은 순간적이나마 행복감을 느끼지않을까 한다.

그런데, 나의 입에서는 슬슬 웃음이 그칠줄 모르고 나온다.
수많은 명품들이 멋지게 전시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쉽사리 전시기술에 현혹이 되는가 싶어서 이다.
나는 바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7층 CGV스타리움으로 올라갔다.
7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시원하게 Void가 뚫려 있다.
마치, 그 Void는 나처럼 시원하게 질러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방정맞은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이 백화점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어느 고객이 Void 아래로 몸을 던져버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영화관에는 어떠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나하고 둘러보았더니,
나같은 아날로그형 인간이 볼만한 영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워낭소리'이다.
최근에 내가 본 영화는 '마마미아'였다.
그것을 본 소감은, 그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던 것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거였다.
아무튼 그 영화를 봄으로써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아바의 위대함이었다.
근 30년전의 아바를 지금도 아무도 넘볼 수 없다는...

그 다음에 내가 들린 곳은 신세계 갤러리였다.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두 사람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신세계 백화점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야말로, 공허하다는 점이.
여기서도 슬슬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둘러댈 것이다. 예술은 사기가 아니냐고.
만일, 그들이 인류의 위대한 작품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다음은,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인 교보문고에 들렀다.
내가 찾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전하는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도 수많은 책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인류를 위해서 무슨 공헌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눈에 띄였는데 구미가 약간 당겼지만 그만 두었다.
글쓰기의 테크닉도 필요하겠지만 내가 그것을 습득해서 무었하겠는가.
이제는 출판이 용이해서 인지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가 본데
그에 반비례해서 나의 관심분야는 점점 좁아져 가고 있다.

여기에는 간이 카페가 있다.
가격표를 보니까 커피 한 잔에 4,500원까지 한다.
두 잔이면 9,000원! 그 값이면 커피 한 병이다. 커피 한 병이면, 한 달은 족히 마실 수 있는 양이다.
내가 너무 궁상을 떠는가. 아무튼 필요없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이면 눈아래 보이는 나루공원에서 맛있게 마실 수 있다.

교보문고내에는 레코드 점이 있다.
내가 앞으로 이 백화점에 들릴 일이 있다면 아마도, 교보문고와 이 레코드점일 게다.
요즘 최고의 명성을 날린다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브코의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유혹을 떨쳐버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도 제대로 다 듣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또 구입한다는 말인가.
나에게는 KBS제1FM의 라디오만 해도 별로 모자람이 없다.

나는 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하층에 내려가서 식품점에서 일미나 좀 살까 하다가 그것도 그만 두었다.
다음에 잔차타고 대변에 가서 사면 싸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내 화실에 오면 일미를 안주로 해서 쇠주를 대접할 터이니 멋쟁이님들이 많이 와주었으면 좋겠다.
그깟 일미 안주는 흥미 없다고?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혼자서 잔을 비울 수 밖에.

아무튼 나는 그렇게도 큰 백화점에서 살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빈손으로 나왔다.
인도의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라고.



또, 훙크파파족의 인디언 추장 '얼굴에 내리는 비'의 말도 생각난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 남는 일(경쟁)'에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라고.






ㅎ~ 읽고 잠시생각하고 ....여름에 아지트에서 자주 파티를 열어주시길 바라옵니다~^^* 09.03.14 13:59

크~~~ 오야루,,, 좋은 글 감솨드립니다 09.03.14 16:42

잘 보았습니다, 09.03.14 21:41

조은글 자주올려주이소... 09.03.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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