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예리항에서 오른쪽으로 쳐다보면 저멀리 가파르게 12번 굽이쳐 오르는 고개가 보이는데 이 고개가 12절재이다.
우리는 근 4시간을 소요해서 자전거로 흑산도를 한 바퀴(27km) 돈 다음에, 해가 상당히 기울어진 늦은 시각에 이 고개에 도착하였다.
이 고개에 올라서니 이미자의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우뚝 서있고, 애닯은 그 노래가 흑산도의 바람결을 타고 멀리까지 울리고 있었다.
흑산도 아가씨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만번 밀려오는데
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네인가 귀양살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나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노래에 우리 일행들이 볼새라 흐르는 눈물을 몇번이나 훔쳐야 했다. 사실,
흑산도 아가씨는 고향이 흑산도인 아가씨가 아니라 지난 1960년대에 예리항에 와 있던 외지 아가씨들이다.
그 당시 북적대던 예리항의 각종 접객업소에 돈 벌러 온 아가씨이다.
과장된 얘기인지는 모르나 한 참 흥청댈 때는 400~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모른긴 해도, 죽을 수 없어서 절체절명적으로 삶을 잇기 위해서 여기에 온 여성들일 것이다.
지금이야 2시간의 뱃길과 4시간의 육로로 하루만에 서울 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겠지만,
당시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목포까지만 해도 뱃길이, 통통배로는 6~8시간, 범선으로는 12~2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들이 육지로 되돌아 나갈 수 있는 자유나 있었을까?
거칠고 거친 이곳에서의 생활,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
부모 형제자매와 고향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매일 밤 가위눌림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애닯은 흑산도 아가씨의 멜로디와 함께 이러한 생각이 나로하여금
숙소로 되돌아 올 때까지 가슴을 저미게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죽지 않고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구별이라는 또 하나의 흑산도에서 부질없이 무언가를
그리워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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