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Canada

미국-캐나다 동부 미술관 여행 3

박희욱 2009. 5. 5. 16:17

미국에 있는 유럽의 미술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어마어마하였다.

유럽보다도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으로 유럽이 피폐했을 때 미국으로 헐값에 흘러간 것이리라.

고향 유럽을 찾은 미국인들이 귀국할 때 가져올 것이 미술품 외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런 작품들이 미술관에 기증되거나 팔린 것으로 보인다.

 

이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맨하탄의 유대인 박물관에서 있었던 모딜리아니 기획전이었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하나인데, 그의 작품은 일반 미술관에서 마주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 만큼 개인이 소장하기 좋은 작품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전시는 그런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어렵사리 끌어 모은 것이었다. 마치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평생에 두번 다시 이런 전시는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의 작품보다도 더 마주치기가 어려운 작품이 루오의 작품이다.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워싱턴의 어느 한 저택을 개량한 작은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20여점이나 오롯이 발견한 기쁨은 무척 컸다.

그의 작품을 보고서 머리속에 떠오른 첫 단어는 '완벽'이었다.

아주 더물게 그의 수채화 작품은 볼 수 있지만 유화작품은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 전에는 일본 오사카의 어느 미술관에서 본 8호 정도의 아주 작은 것이 유일한 것이었다.

 

미술관을 순방하면서 이러 저러한 이유로 감동의 눈물도 많이 흘렸다.

시카고 미술관에서 있었던 쇠라의 특별전을 보고서 미술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인가 새삼스럽게 감동하기도 했다.

 

고흐의 작품은 그의 삶과 함께 언제나 나의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권총자살도 총알이 빗나가서 바로 죽음을 맞이 하지 못하고 처절한 고통을 거친 다음에 하늘나라로 가야했다.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는 왜 모든 것이 이렇게 서툴까!'

그림물감을 사기 위해 1주일에 3일을 먹고 4일을 굶주려야 했던 그가,

이제는 그의 작품 하나가 8,750만 달러에 팔리는 것을 하늘에서 본다면 어떠한 심정일까!

모짜르트가 천상의 음악을 작곡하였다면 그는 천상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작품 '게르투르드 슈타인'을 보고서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틀어막는다고 애를 먹어야 했다.

그를 폄하했던 참회의 눈물이었다. 나는 이 작품 앞에서 그에게 무릎을 꿇고 완전히 엎드린 셈이다.

그의 탄생 전에는 아무도 표출하지 못했던 인간의 어떤 감성을 그림으로써 표현한 것이다.

 

불멸의 걸작들을 보면 공통된 점이 둘이 있다.

그 하나는 대단한 내공이 들어 있다것과,

다른 하나는 어떤 자유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아래에 올린 사진들은 한 번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나 아쉬워서 샤터를 눌러 본 것들이다.

 

 

 

 

 

 

 

 

 

 

 

 

 

 

 

 고흐는 700점 정도의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그림은 단 1장이었다.

그 중에서 닭장 구멍마개로 쓰인 것도 있다고 한다. 어느날 그림을 사겠다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고흐는 기쁜 나머지 이 그림 저 그림 권해보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화가난 고흐는 쫓아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애처로운 형을 생각한 동생 테오가 돈을 줘서 보낸 사람이었다.

테오도 형이 죽은지 1년 만에 그의 뒤를 따랐다.

 

 

 

 

 

 

 

 

 

 

 

 

 

 

 

 

 

 

 

 

 

 

 

 

 

 

 

 

 

 

 

 하바드 대학의 포미술관에서 발견한 고흐의 '3켤레의 구두'

 낡아 빠진 구두가 마치 그의 삶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이러한 소재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고흐의 눈은 어떠한 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