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여행을 떠나면서

박희욱 2010. 9. 24. 19:00

오늘도 여느날과 같이 해운대 비치를 자전거를 타고 스쳐 지나간다.

청명하기 이를데 없는 하늘이 빛나는 날이다.

짙푸른 하늘은 한없이 높고

저멀리 수평선 위 뭉게구름이 목화솜처럼 피어오르고

밀려오는 옥색빛 물결이 모래밭에 하얗게 부서진다.

싱그러운 바람도 부더러운 손길로 나를 어루만진다.

매일 변화하는 풍부한 표정의 해운대 비치를 지나다니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지난번 뉴질랜드를 다녀온 후 올해의 봄은 무척 추웠고

지난 여름 또한 유래 없는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제 비로소 빛나는 계절을 맞이하자 마자 다시 인도/네팔 여행에 나서자니

마음이 조금은 심란하다.

 

청사포에 도착하여 화실을 정리하였다.

75일간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방을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냉장고의 음식을 꺼낸 다음 코드를 뽑고

오디오 코드도 뽑고

컴퓨터 코드도 뽑고

창문을 잠그고

방안을 한 번 돌아본 다음에

현관문을 닫아서 잠궜다.

그리고 이웃에게 화단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렇게 하여 화실과 작별하였다.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마음이 설레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이력이 날만한데도 설레이기는 커녕 아직도

힘든 여행이 두렵기도 하고, 배낭을 메고 홀로 굴러다녀야 하는

외로음이랄까 부담이랄까, 그것이 마음을 사뭇 무겁게 한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가슴을 치밀게 하는 슬픔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홀로 떠나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에서 오는 것이리라.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일까.

 

며칠전에 폐암으로 근 2년가까이 투병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죽는 그날까지 그는 친구들의 문병을 거절하였다.

병들고 찌그러진 자신의 육체를 보여주기 싫어서 일까, 아니면

사람은 홀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서 일까.

장기간 여행할 때마다 외로움에 익숙해져 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못하다.

 

장례식에 조문한 어느 친구는 가족들이 전혀 슬픈 기색이 없어서 좀 의아스러웠다고 했다.

병든 육체를 치우는 일인데 슬퍼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별의 슬픔은 나중에 올 것이다.

육체는 소중히  돌봐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소유한 살아있는 물체에 불과하다.

내가 죽는다면 차라리 육체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바로 삶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나도 죽음을 첫경험하면서 세상이라는 꿈과 작별하고 싶다.

 

인도여행은 97년도에 4주간에 걸쳐서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아내의 요구에 따라서 한 사람을 동반하였다.

그 여행의 컨셉은 인간이 어느정도의 비참한 생활까지 감내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인도에 대하여 신비한 나라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내가 느낀 인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기도 하였다.

(13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은 치열의 극한에 이르렀는가?)

물론 시골에 사는 대다수의 인도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지만.

인도인들 중에는 할일이 없어서 늘어진 개팔자처럼 지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인도의 개들은 아무데서나 늘어져서 앙상한 몸을 누이고 있다(잡아도 보신탕 몇 그릇도 나오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이번 인도/네팔여행을 계획한 것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ABC를 트레킹하고,

인도의 진인(眞人)을 먼 발치에서라도 일견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나와 메일을 주고 받았던, 인도를 5번이나 방문한 어느 스님의 말씀이 나같은 필부는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도 진인을 친견하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하여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깨달은 진인이 히말라야 토굴속에 칩거하면서 육체의 죽음을 기다린다면 그런 진인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진인친견은 포기하였다.

 

여정은 네팔 카트만두로 들어가서 안나푸르나ABC를 트레킹한 다음에 룸비니를 거처서 인도의 보드가야로 갈 것이다.

거기서 한국사찰에 계시는 스님과 상의하여 위빠사나명상수행을 시도해볼까 한다.

분위기가 내게 맞으면 1개월간 해보고, 아니면 지난번 여행에 들러보지  않았던 곳을 이리저리 방랑할 작정이다.

인도의 국토는 무척 넓어서 서유럽 전체의 넓이와 같다. 지난번 여행 때 1개월간 인도를 돌아보겠다고 했더니

이란인 여행자는 그것은 2~3일에 프랑스를 모두 돌아보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인도의 역사나 사회, 문화, 종교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인도의 자연과 사원과 유적의 풍광에 관심이 있으며,

인도인 각 개인의 삶을 통하여 나 자신을 비춰보고 싶을 뿐이다.

지난번에 본 인도의 자연은 대체로 매우 활량한 편이라서 좋은 풍광을 접하지 못했다.

지금 현재 인도는 정치와 사회적으로 무척 혼란하고 불안하여서 여행이 조심스럽다.

자연재해와 함께 테러의 공포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인도북부의 하머쩔 히말라야 지역 여행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기대할 수 있는 지역은 남인도 케랄라주의 해변풍경 밖에 없을 것 같다.

 

행운이 있다면 보드가야에 눌러 앉아 있다가 거기서 귀국할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 여행이 오고감이 없는 여행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그것은 필요한 모든 것을 나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을 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외부에 없을 때, 그리하여

아무것에도,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번 여행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 간다

그러다가 달이 뜨면

이번에는 구름에 달이 간다

 

하늘에 구름이 스쳐지나도

아무데도 가지 않는 달(viveka)

나는 그런 오고감이 없는 달의 나그네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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