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림

진리와 빛

박희욱 2012. 4. 14. 06:07

나는 진리가 빛일 것이라고 여겼다

진리가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밝혀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은 것은, 환한 빛으로 가득한 더넓은 길을 걸어가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진리는 걸어가야 할 길이 없슴을 알려주는 빛이었다

아니다. 그것은 걸어가야 할 길을 덮어버리는 환한 어둠이면서,

또한 그것은 어두운 환함이었다

 

누군가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는가1

나에게는 걸어가야 할 길이 없다. 나에게는 아무런 뜻이 없기 때문이며, 

내가 걸어가는 곳이 바로 길이다

 

내 생명력이 다하는 그날이 오면, 나는 아무데도 걸어갈 수 없어도 좋다

지금여기 그냥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축복이다

나의 존재는 의식이며, 그것은 바로 이미 도달해 있는 복 - 至福이다

 

나는 빛이요, 길이요, 진리이다, 아니다

내가 그토록 찾았던 진리가 바로 나다

다시말하면, 그것은 내가 그림자처럼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1. 내가 다녔던 중학교 교문 앞 비석에 새겨져 있었던 문구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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