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sk

8월 05일 골드 스미스 교수댁(Professor Goldsmith's House)

박희욱 2012. 8. 23. 06:17

날씨: 흐림

 

  여행을 마치고 귀국의 날이 다가오면 항상 몸을 사리게 된다. 마치 군대의 제대병이 몸을 사리 듯이.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위험한 싱글트랙 라이딩을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하루를 푹 쉬기로 했다.

 

  골드 스미스 부부는 치트나를 빠져 나와서 리처드슨 하이웨이의 글렌낼런에 가까워 졌을 때 도로상에서 만났다. 이 부부는 자전거 레이서를 차량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서로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돌아서는 나에게 명함을 주면서 앵크리지로 돌아오면 연락하라고 하였다. 나는 8월 5일쯤에 돌아갈테니까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날짜가 다가오자 주저 되었다. 그냥 지나치다가 그 때의 기분으로 한 말을 믿고 그대로 찾아가겠다고 한다면 크다란 실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응을 보기 위하여 8월 4일에 열차로 앵크리지로 돌아가는데 앵크리지를 떠날 때까지 3일이 남는데 좋은 싱글트렉을 소개해 달라고 이메일로 부탁을 해보았다.그랬더니, 답신이 왔다. 내용은 열차가 오후 8시 20분에 도착하니까 마중을 나가겠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가서 자고 다음날은 일요일이니까 자기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월요일은 와서 생각해보자. 그리고 귀국할 때는 공항까지 픽업을 해주겠다. 정말 고마운 답신이었다.

 

  서로가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3일 밤을 신세지는 것은 상당히 나에게도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둘째 날은 조심스럽게 이본느에게 여러 날을 불편케 하고 싶지은 않다고 완곡히 말했더니 염려하지 말고 머물러라고 했다.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최선의 길은 내가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도 이 부부의 집에서 비교적 편하게 행동하였다.

 

 

 

 

 

 

 

 

 

 

 

 

 

 

 

 

 

골드 스미스 교수의 집무실과 2층 거실

 

 

 

내 방 창문으로 본 모습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2층 거실

 

 

 

 

 

 

 

1층 거실과 식탁

부인 Yvonne는 거실에서 벤조를 열심히 연습했다.

 

 

 

부인 Yvonne

미국에서 테어난 중국계 여인

뉴욕 출신이라고 했다.

 

 

 

이 집을 설계하기 전에 Yvonne가 참고한 건축서적

그래서인지 설계가 개성이 있고 멋져 보였다.

 

 

 

나의 블로그에서 mtb로 안나푸르나 토롱라에 올랐던 사진을 보고서 놀라워 하고 있다.

그들도 1982년도에 토롱라를 넘어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오를 그 당시에는 하이캠프도 없었다고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지금보다는 트레킹하기가 훨씬 열악한 사정이었다.

이본느의 어머니가 항공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저렴한 항공권을 이용하여 많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부엌에서

 

 

 

 

 

 

 

 

 

 

 

멀리 앵크리지가 보인다.

 

 

 

 

 

 

 

 

 

 

정원을 손질하는 이본느

 

 

 

 

 

 

 

 

 

 

 

 

 

 

 

 

 

 

 

 

 

 

 

 

 

 

 

 

 

 

 

 

 

 

 

 

 

 

 

 

 

 

 

 

 

 

 

 

 

 

 

 

 

 

 

 

 

 

 

 

 

 

 

 

 

 

 

 

 

 

 

 

 

 

 

 

 

 

 

 

 

 

 

 

 

 

 

 

 

 

 

 

 

 

 

 

 

 

 

 

 

 

 

 

 

 

 

 

 

 

 

 

 

 

 

 

 

 

 

이본느는 62세, 정년을 하려면 2년이 남았고,

정년 후에는 태평양 연안 아스토리아에서 대서양 뉴욕까지 자전거로 횡단하려는 부푼 꿈을 실행하겠단다.

이 부부는 이미 샌디에고에서 플로리다까지 42일간에 걸쳐서 횡단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식품조달이 어려웠다고 한다.

 

Scott은 교수직에서 정년을 한지가 겨우 2달 전이라고 한다.

재직 당시의 75% 정도의 연금을 받는데 $10만 정도 된다고 한다.

 

이본느는 정원을 좋아해서 화가 모네를 좋아한단다. 스콧은 칸딘스키를 좋아하고.

나에게 물었는데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고 했다.

 

 

 

Scott Goldsmith 교수는 시카고 출신인데

둘이는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과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서로 만나서 결혼을 하였다.

누가 먼저 알래스카로 이주하자고 했느냐니까 이본느가 자기가 먼저 했단다.

자녀는 미혼인 32세와 30세의 두 딸이 있는데 콜로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앵크리지로 돌아왔단다.

 

이 부부는 배트남과 라오스를 자전거로 여행을 하였고

티벳 라싸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24일 간의 자전거 여행을 했다 한다.

이번에는 8월 12일에 이탈리아에 가서

볼자노에서 돌로미테까지 10일 간 자전거 여행을 한단다.

 

 

 

 스콧은 일요일에도 컴퓨터 앞에서 경제관련 리포트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고,

월요일에는 아침 일찍 연구소에 출근하였으며, 내가 떠나는 날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한다고 했다.

이본느가 남편은 1주일에 50~60시간 일한다고 해서 일 중독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일과 노는 것은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평균적인 미국인들도 일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는 오바마의 민주당 지지자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이지만 경제적으로는 평등주의자라고 했다.

사실, 경제학자가 평등을 부정한다면 자신들이 설 자리가 별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은 서로 양립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학자들이란 대개 머리는 명석하지만 눈은 어둡다.

 

 

 

아침 신문을 가져오는 Scott

 

 

 

 

 

 

 

 

 

 

 

왜 이주하려고 했느냐니까 그 당시 미국인들이 중국인들을 싫어하고

또 혼잡한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인종차별을 피하고 싶었다는 말일 게다.

1975년도에 알래스카로 이주하였다.

 

 

 

부억에 딸린 이본느의 집무공간

그녀는 통계관계 일을 보는 알래스카주 공무원이다.

 

 

 

이 집은 얼마쯤 하느냐니까 $60만 정도란다.

여기는 고급주택가였다.

 

 

 

마지막 날 자전거 포장을 하러 샾에 가는 길에 스콧은 어떤 집을 가리키면서 저 집은 대단히 고가인 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물어 보았다. 당신은 지금보다 더 좋은 집을 원하느냐고.

그는 노우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의 집의 크기를 물었다.

아마도 나의 사는 정도를 가늠해보겠다는 뜻일 게다.

 

집이란 바람과 비를 피하고, 다뜻하게 몸을 눞일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수가 넓을 수록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의 평수를 늘리고 승용차의 배기량을 늘리려고 용을 써다가 인생의 황혼을 맞이 한다.

이미 정신을 차릴 때는 이미 기수를 돌릴 수 없는 타이타닉호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