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플롬에서 래르달2(Flam to Laerdal)

박희욱 2013. 9. 5. 06:31

 

 

이곳에 이르러자 비가 쏟아졌다. 벗어 놓았던 우의를 다시 입으려고 보니 뒷패니어의 조임줄이 없어졌다.

아까 점심을 먹을 때 추워서 옷을 꺼집어내면서 조임줄을 떨어뜨린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비도오고, 춥고, 시간도 상당히 지체되었고.

갔다 오는데 30분은 족히 걸리겠지.

패니어의 없어진 조임줄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겠지. 안되겠다, 갔다 와야겠다.

무거운 패니어를 떼어 놓고 달려 내려갔다. 그러나 없다.

아까 간식을 먹을 때 그때 떨어뜨렸나? 그럴리가 없는데.

할 수 없다. 귀국해서 다시 구입하는 수 밖에.

 

우의 분실, 수통 분실, 패니어 맬방 분실, 앞으로 또 무엇을 분실할지 불안하다.

여행중에는 무엇을 잃어버리면 언제나 불안해진다. 앞으로 또 무엇을 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경제적 손실도 문제지만, 우리집에서와는 달리 같은 제품을 다시 구하기가 용이하지 않고,

찾을 수 있어도 시간이 손실되고 여행의 차질을 가지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분실한 맬바을 잊어버리자고 되내이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엎힐을 하는데 자전거 바퀴 옆에 그 멜방이 눈에 띄지 않는가!

찾았다! 이거는 왕재수다!

 

 

이 길을 어떻게 올라가나!

앞쪽의 상황도 모르겠고 비까지 내리니 불안하다.

오늘 래르달까지 못 간다면 중간에 숙박할 곳도 없을 텐데 어떻하나.

되돌아 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아니다.

죽이 된던 밥이 되던 앞으로 가보자. 만일의 경는 히치하이크를 시도하자.

그것도 쉽지 않겠지. 자전거와 패니어를 보면 그냥 지나쳐버리겠지.

 

 

 

빗물이 아스팔트를 타고 내린다.

 

 

 

 

눈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을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추위가 겁난다. 이렇게 조금만 더 계속되면 옷이 젖어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비가 스며들지 않으면 땀으로 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수장비는 오랜시간이 지나면 옷이 젓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찬 빗물의 침입을 방지함으로써 보온역할을 하는 것이다.

옷이 젖어버리면 의복의 단열성능도 떨어져 버린다.

오늘 따라 배도 자꾸 고파진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급해서 어디 앉아서 먹을 엄두가 나지 않고,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지점까지 간 다음에 무얼 먹을 수가 있다.

 

길의 경사는 거의 변함없이 8%를 유지하고 있다.

 

 

 

 

 

 

 

하얀 줄이 올라온 길이다.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불안하다.

나는 애초에 1~2시간만 고생하면 그때부터는 평원을 달릴 것이라고 막연히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빗나가고 말았다.

호텔에서 그 아가씨가 나를 말렸을 때 나는 급경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큰소리 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알기는 무얼 안다고!

 

 

 

 

 

 

 

 

 

 

 

 

 

 

 

 

 

일단, 고개는 올라선 것 같다.

여기까지 단 한 번의 내리막길도 없이 꾸준히 8%의 경사도를 유지하였다.

나는 오르막길이 이렇게 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호텔에서 그 남자가 버스를 타고 가라고 권우했을 때 나는 경치를 보기 위해서 이 길을 택하겠다고 하자

그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 들어가버렸다.

그래? 그러면 한 번 고생해봐, 자슥아!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 도로의 최고 고도는 1,320m였다.

 

 

 

 

나는 이런 빙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당황했다.

기온은 8도. 그러나 산의 능선에서 흔히 만나는 강풍이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그것마저 불었다면 나는 죽을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늘이 맑았드라면 천천히 즐기면서 라이딩을 할 건데 오늘중으로 래르달에 닿지 못할까봐 지금은 마음이 급하다.

시계는 벌써 오후 5시.

 

 

 

 

차량통행도 거의 없다.

이런 흐린 날씨에는 누구나 바로 아래에 있는 24km의 터널을 통과하겠지.

최악의 경우는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는데.

 

 

 

 

 

 

 

 

 

 

 

 

 

 

 

 

 

 

 

 

 

 

 

 

 

 

 

 

 

 

 

 

 

 

드디어 비는 점차 그쳤고 기온도 10도로 상승하였다.

단, 2도 상승했는데 체감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제는 살았다 싶었다.

 

 

 

 

 

 

 

 

 

마음은 무의식 중에 이 역경을 빨리 회피하기 위하여 자꾸 앞으로 내달리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어떻게 하여 이 엄청난 풍경을 맞이 했는데 급히 서둘러 지나치려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이어가 1.5 슬릭타이어이기 때문에 빗길에 미끄러질까봐 무척 조심스럽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달리는 속도에 의한 바람 때문에 체온손실이 크므로 옷을 단단히 차려입었다.

 

 

 

 

 

 

 

 

 

 

 

 

 

 

비로소 여기서 자전거를 눞혀 놓고 소세지와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내리막길이 오르막보다 경사가 더 급했고, 끝없는 다운힐이 계속되었고,

다운힐이 이렇게 지겨운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그만큼 긴 업힐을 해냈다는 것이니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뒤돌아본 모습

 

 

 

 

플롬을 출발할 때는 오늘 내로 Sgndal까지 여유롭게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안나푸르나 토롱라 고개를 오를 때보다 더 힘들었다.

긴 엎힐에서 힘들 때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서 눈을 앞으로 멀리 하지 말고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을 보면서 생각을 없애도록 노력한다. 마치 소처럼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념이 되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먼 미래를 응시하라고 배웠고,

우리는 뚜렷한 관념과 개념을 가지고서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나도 그렇게 하도록 노력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변했다.

 

그러한 관념과, 개념과 함께 모든 사념을 지우고 발밑을 보려고 노력한다.

말하자면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천국으로 통하는 다른 길은 없다.

 

끊임없는 내리막길을 계속 내리달리다 보니 길이 조금 좁아져 있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달리 옆길로 빠지는 길이 없었다. 옆으로 빠지는 길이 있기는 했으나 철봉으로 막아놓았던 곳이다.  어떤 노인에게 래르달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으니 영어가 불통인 그는 대답은 못하고 떠나는 나의 어께를 툭툭 쳤다.

수고가 많았다는 격려의 제스처였을까, 아니면 너 참 개고생했구나하는 측은함을 나타나는 제스쳐였을까.

 

드디어 해수면에 도달하였다. 해수면에서 해수면에 도달을 했으니 정확히 1,320m를 빗속에서 오르내린 것이다. 래르달은 도달한 해수면 지점에서 해변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4km를 더 달려야 했다.

 

오늘은 캠핑장 텐트속에서 자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래르달 입구의 어느 호텔에 들어가서 기웃거리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있다. 나는 그 가이드에게 사정을 말하고 좀 싼 방을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역력히 개고생한 나의 몰골을 보고서 훨씬 저렴한 단체요금으로 방을 구해주려고 했으나 빈방은 없고, 도착이 불분명한 예약자가 있는데 만일 오지 않는다면 단체요금으로 주겠단다. 이것을 기다릴 바보가 어디 있겠나. 그 호텔의 가장 싼 룸이 Nkr 1,300 이었다.

 

안되겠다, 저렴한 히테를 찾아보자. 나는 근처에 있는 캠핑장으로 찾아가서 히테를 달라고 하니까 풀이란다. 제일 싼 방이 얼마냐니까 Nkr 495. 짐짓 비싸다는 투로 이 근처에 더 싼 곳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펜션을 찾아보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실은 나는 Nkr 800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래르달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 30분이었고 지금 시각이 8시인데 어디가서 방을 구한다는말인가.

오케이, 방을 달라! 그 방은 캠핑장의 모텔이었다. 노르웨이에는 모텔이 그리 흔하지 않고 더구나 캠핑장에 모텔이 있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모텔은 제법 큰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투숙객이 전혀 보이지 않고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종업원조차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마치 이렇게 큰 건물을 나혼다 독차지한 느낌이다. 잘 준비된 크다란 부엌도, 넓은 식당도 독차지다.

모든 짐을 꺼내서 말리고, 젖은 옷은 빨아서 널고, 샤워를 하고, 부엌에서 밥을 지어먹고, 커피를 한 잔 들고 소파에 앉음으로써 오늘의 일과를 끝내니 시각은 벌써 1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다. 일기는 내일 쓰야겠다.

 

정말 대단한 고생을 하였지만 예기치 못한 엄청난 설원의 장관을 본 것이다.

나는 이 길을 몰랐고, 몰랐기 때문에 올랐지만 몰랐던 것이 행운이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대서양 깊디 깊은 검은 바닷물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에 잭 도슨은 로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배에 탔던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어!"

잭 도슨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사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바로 영원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시간속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타이타닉에 승선한 것은 어느날 우연의 카드놀이에 의한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 도슨이 사라진 바다에 돌아온 로즈는 그동안 간직해 왔던 다이아몬드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이아몬드가 우리의 삶을 좀먹는 괴물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영화 타이타닉을 청춘남녀의 청순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전혀 그게 아니었고, 우리의 삶을 압축하여 밀도 있게 그리고 있었다.

그 영화는 유일하게 나로하여금 흐느껴 울게 한 명화였고, 극장문을 나서서도 나를 울먹이게 한 영화였다.

나는 그 영화와 완전한 공명을 이루었던 것이며, 그 공명소리가 바로 나의 울음이었다.

나는 그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이렇게 곧 사라질 육신에 끄달리면서 삶을 낭비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십자게 매달아 버린 예수처럼 육신의 삶으로부터 탈피하라.

그리하면 탈피한 잠자리처럼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부활하여 천국으로 올라간 예수이다.